‘호쾌대활(好快大活)’
‘호쾌대활(好快大活)’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1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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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호국사찰’ 신흥사(新興寺, 북구 대안4길 280)를 지인과 함께 방문했다. 일 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사찰은 임진왜란 당시(1592년 5월) 승군(僧軍) 100명이 기박산성의 의병들과 힘을 합쳐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14일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이곳을 다녀간 것도 바로 그런 사연 때문이었다.

일 년 전과 대비되는 것이 있었다. 사찰 안내판 내용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 안내판은 이 사찰의 창건주와 창건시기,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활약상(‘제월당실기’ 기록), 재건과 두 차례의 중창 시기를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특히 이 사찰의 옛 대웅전(응진전)이 울산시 문화재자료 9호로, 대웅전 단청반자가 울산시 유형문화재 36호로, 대웅전 아미타삼존불이 울산시 유형문화재 39호로 지정된 사실도 같이 적어놓았다. 방문객은 석운(碩雲) 주지스님의 불사(佛事)가 끝날 때까지 손님맞이 방에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 시선은 자연히 벽으로 행했다. ‘珊瑚碧樹(산호벽수)’란 액자 속 한문 탁본이 시야에 잡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액자 아래에 ‘추사 김정희 작품’이란 설명이 “바다산호와 푸른 숲처럼 크게 번성한다”는 뜻풀이와 함께 적혀 있었다. 불사를 끝내고 입실한 스님과 대면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액자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화답이 돌아왔다. “큰절(本寺=통도사·通度寺), 영배스님 밑에서 기획국장 지낼 때 자주 보아온 글씨지요. 큰절에는 추사(秋史) 작품이 제법 많습니다. 완숙미가 돋보이는 말년의 작품들이지요. 다른 사찰의 추사 작품 대부분이 제주도 유배 전후에 쓰인 것과는 차이가 나지요.”

시선은 다시 식탁형 다탁(茶卓)으로 모아졌다. 글씨탁본 두어 점이 더 눈에 들어왔다. ‘노송무영(老松無影(=오래된 소나무는 그림자가 없다)’과 ‘호쾌대활(好快大活)’이었다. 두 작품 모두에는 ‘阮堂(완당)’이란 호가 선명했다. 영락없는 김정희(金正喜) 작품이었다. 석운스님의 말마따나 신흥사의 본사(통도사)와 말사(末寺)에는 추사 작품이 편액(扁額) 형태로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통도사에는 ‘산호벽수’ 외에 ‘탑광실(塔光室)’, ‘노곡소축(老谷小築)’, ‘일로향각(一爐香閣)’이 남아있고, 말사인 극락암에는 ‘호쾌대활’과 ‘무량수각(無量壽閣)’, 사명암에는 ‘대몽각(大夢覺)’과 ‘일화오엽루(一花五葉樓)’가 지금도 내방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석운스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추사는 통도사 스님들과도 교분이 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화 도중 흥미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됐다. 석운스님이 ‘好快大活’이란 탁본글씨를 송철호 시장에게 선물한 사실이다. “5월 18일, 시장님 일행 30여명이 산행을 다녀오는 길에 이곳을 찾았는데 제가 방문 기념으로 그 글씨를 시장님께 드렸지요.” 글씨탁본 하단에 적어둔 뜻풀이는 다음과 같았다. ‘호쾌하게 웃어 크게 살아남’. 사실 송 시장은 평소에도 웃음이 많다. 한 번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컷 웃다가도 경기(驚氣)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답니다. ‘웃음경기’라고나 할까.” 순수한 웃음인데도 오해 사는 일이 적지 않다는 얘기였다. 신흥사 석운스님 얘기도 꺼냈다. “글 뜻이 너무 맘에 들어 집에 걸어두고 있습니다. ‘호쾌하게 웃으면 큰일도 해낸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시장은 얼마 전 지역신문에 실린 독자기고 ‘송 시장의 미소’를 접하고 파안대소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수소문 끝에 글쓴이가 중구 북정동에 사시는 팔순 어르신이란 사실을 알고는 정중히 예의를 차렸다고 전한다.

추사의 숨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것 같은 통도사 극락암.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추스르며 대가(大家)의 속뜻 깊은 글씨를 마지막으로 소환해 본다. 好·快·大·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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