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암 가는 길
극락암 가는 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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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하고 청량하다. 오신채와 젓갈을 쓰지 않는 사찰김치는 이맘때 묵은 맛이 최고다. 콩나물 무침에 푸릇한 나물 한 점을 넣고 된장국 몇 숟가락으로 간을 맞춰 입 안으로 넣자면 혀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자극적인 세상사에 날선 마음도 몸도 순해진다.

바람이 없는 차가운 무풍한솔 길을 걸어, 그 청량함을 꼭 닮은 통도사의 절밥을 먹기 위해 산문을 넘는 일은 자주는 아니지만 잊을만하면 발이 먼저 알고 나서는 의식이 되었다. 무언가 간절해지거나, 어느 것조차도 갖고 싶지 않아 놓아버리고 싶어지면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기도처럼.

동양학자 조용헌의 ‘통도유사’란 책에 보면 세계의 오래된 도시나 신전이 있는 곳은 지기의 영험함으로 맑아지는 곳, 신들이 거처하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표현이 있다. 하늘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독수리 지형과 여섯 마리 용이 사는 터를 가진 곳이라는 글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누구나 하늘 아래 날개 펼친 통도사 영축산 앞에서 그 장엄한 산세에 압도된다.

그 영축산의 북쪽 중턱에 자리 잡은 암자 극락암으로 향한다. 한창 수국이 피고 영지에는 연꽃이 꽃 몽우리를 밀어 올려 갓 피어났을 때이다. 극락암의 산문으로 들어서는 길은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허리를 굽고 서있는 솔 숲길을 걸으며 시작된다. 서로에게 몸이 닿지 않게 배려하느라 긴 세월 구부러지고 휜 노송들. 세 발자국 걷고 두 손을 한번 모으는 삼보 일 배, 그렇게 마음에 박힌 가시 하나씩 풀어내며 걷는다.

둥근 무지개다리가 보이고 환한 보랏빛 수국이 곁을 지키는 연못에 다다르면 이제 극락암이다. 그 첫 풍경에 매료되어 때를 놓치지 않고 왔는데 무언의 약속에 자연은 어김이 없다. 넝쿨이 감아 올라 석축의 모습이 가려졌지만 베어내지 않는 자연스러운 세월이 내려앉았다.

극락암에는 몇 가지 흥미 있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70년대 중반 대마초 사건으로 세간의 입이 오르내리던 가수 조용필씨의 일화가 그 하나다.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려 찾은 이곳, 그를 모르던 노승이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라고 묻자 ‘노래하는 가수입니다’라는 대답에 ‘ 그럼, 너는 꾀꼬리구나, 꾀꼬리를 찾거라’라는 선문답을 들은 후 늘 화두로 마음에 담았다가 작곡한 곡이 ‘못 찾겠다 꾀꼬리’였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봄이면 홍매화, 산수유, 여름이면 수국, 백일홍이 만발하는 꽃 같은 절, 바로 그 꾀꼬리를 찾으라던 조실 경봉스님과 많은 스님들이 수양을 하려 찾았던 배움의 절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급한 일은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다. 하지만 중생은 화급한 것은 찾지 않고 바쁘지 않은 것에만 바쁘다고 한다’ 말씀하셨던 경봉스님은 극락암 뒷간 두 곳에 팻말을 걸었다.

작은 일을 보는 휴급소(休急所)에서 쉬어가고 큰일을 보는 해우소(解憂所)에서 근심을 풀어 놓으면 도를 닦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산사의 뒷간에 해우소라는 낱말을 처음 지으신 분이시다. 그렇게 극락암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쉬어가고 또 비워내는 곳이기도 하다.

달빛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영월루에 올라 연못을 바라보며 잠시 앉았다. 정처 없이 흩날리는 비조차 극락에선 단정하게 떨어지는 모양이다. 또옥똑 또옥똑 아래로 아래로. 바람과 햇살을 머물게 하는 네모난 절 창 아래로 아래로 내 마음도 내려앉는다. 가고 오는 이들의 염원을 담아 태양빛과 물이 빚어낸 연꽃 수백 송이가 피어오른다. 뽀얀 연꽃이 마치 별 그림자마냥 검은 물빛 위에서 반짝인다.

경봉스님의 여러 설법 중 마음에 닿는 글귀가 있다. ‘설법을 하자니 입으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말은 말뿐이요 글로 수없이 적는다 해도 다만 글뿐, 비유하자면 매일 먹는 밥이지만 그 참 맛을 말로 형용하기 어렵고, 장미의 향기를 맡고 그 향성을 글로써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말씀이 있다. 행할 곳이 없고 일체의 형상이 없다는 그 진리의 말씀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우매한 중생은 오늘, 맛나게 먹고 시원하게 누고 향기롭게 꽃향기에 취해, 잠시 극락에 닿았다고 다만 써본다.

최영실 여행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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