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검 “피의사실 공표죄 엄격히 적용돼야”
울산지검 “피의사실 공표죄 엄격히 적용돼야”
  • 강은정
  • 승인 2019.07.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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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재판 관행 반복 근절 연구 책자 발간… 문제점·위법성·외국 사례 등 분석
울산지방검찰청이 최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시된 채 여론재판을 받거나 재판을 받기도 전에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관행이 반복되자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결과를 책자로 발간했다. 수사단계에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인격권, 사생활 비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은 이후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할지라도 명예를 회복할 수 없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 적용의 관용적인 태도 보다는 제한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지검은 9일 울산지검 송인택 검사장, 황의수 차장검사 등 울산지검 검사들로 구성된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모임’이 1년 동안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의 문제점, 구성요건, 위법성, 외국과 국내 사례 등을 분석한 286쪽 분량의 ‘피의사실공표죄 연구’ 책자를 냈다.

대한민국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론 재판을 방지하고, 국민의 명예 등 인권을 보호하며,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됐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수사기관의 보도자료 배포, 브리핑 등으로 혐의사실이나 수사 상황이 기소 전에 빈번하게 공개되는 현실에 대해 지적하며, 피의사실 공표가 국민의 알권리 보다 수사실적 홍보용이나 피의자의 압박용으로 악용돼 왔다는 점을 꼬집었다.

울산지검은 검찰에서도 이 법적용을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라는 자기반성적 이야기와 함께 알권리 등을 이유로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하고 있는 공보준칙, 공보규칙 등을 다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가 된 원인에 대해서는 수사의지 부족과 형사처벌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피의자의 인권 보호만을 고려하고 국민의 알권리 내지 표현의 자유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피의사실 공표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기본권 침해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돼 위헌이므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 울산지검은 피의사실공표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이를 엄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근 피의자가 수갑을 찬 채 조사 받는 모습을 언론사가 촬영토록 경찰이 허용해준 것이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재판부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받던 A씨의 모습이 공개돼 초상권과 인격권이 침해됐다고 보고 국가가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수사기관에서는 원칙적으로 공판 전에 사건 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을 뿐더러 중요 범인을 검거했거나 국민 의혹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보이스피싱) 혹은 유사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공개토록 하고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올해 초부터 피의사실 공표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태다.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원칙에 위배되는 피의사실 유출로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취지가 담긴 지휘 서신을 검찰에 보냈다.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 역시 수사공보 행위와 피의사실 공표죄가 구별되지 않아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공표가 이뤄지고 있다고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울산지검 송인택 검사장은 “기소 전은 물론 기소 후에도 재판 확정 전에 피의사실을 보도하면 수사나 재판 종사자는 물론 언론사와 기자조차 모두 법정모독죄로 엄벌하는 영국의 예도 있는 만큼 피의사실공표죄는 보다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라며 “제도적 장치 도입은 물론 피의사실공표를 실질적으로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책자는 검찰청과 사법연수원 등 검찰 관계 기관에 1천부를 배부하고, 검사에게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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