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의 세상보기] ‘당신의 시간표대로’
[박재준의 세상보기] ‘당신의 시간표대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09 2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독교가 나의 인생에 자리를 잡은 것은 기독교재단의 미션스쿨(고교)에 입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점수는 성경이론과 교회출석률을 합산해 매긴 탓에 좋은 결과는 기대 밖이었다. 주말에는 가끔 시골(경북 청도)로 내려가 농사일을 돕고 돌아올 땐 찬거리며 양식을 가져와야 했으므로 자연스레 교회를 등지는 날이 많았다. 성적이 전교 1등인 학생이 성경과목 점수만 ‘미’에 머무른다는 사실은 교무회의에서도 심각하게 거론될 정도였지만, 용케도 졸업할 때까지 ‘교내 톱스타’ 자리만은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뒤돌아보면 성경을 학점 위주로, 그것도 반강제적 주입식으로 가르친 교육방식이 도리어 ‘어린 양’들이 ‘목자’를 등지게 하는 원인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동기나 동문회 전체를 놓고 봐도 기독교인으로 남은 이가 몇 안 된다는 사실이 이 가설을 기분 좋게 뒷받침한다.

운 좋게도 졸업과 동시에 한국전력에 입사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품’은 떠난 지 이미 오래였다. 그 무렵 많은 고교 동문들은 일자리와 대학진학을 동시에 꿈꾸고 있었고, 대학이 지천이다 보니 대학 가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그래도 장남인지라 부모님 생활비며 동생들 학비는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대학진학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고, 직장생활에만 충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은 ‘입영 기피’의 유혹에 빠져들게 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병무청 끄나풀(브로커)에 기대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때만 해도 입영시기를 30세까지 늦추면 제2국민역(보충역)으로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병무행정비리가 터졌고, 온 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한전 본사 감사실에서 “즉시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지 않으면 해고된다”는 최후통첩장이 날아들었다.

정상적으로 24살이면 군 생활 3년(36개월)을 마치고 제대하는 나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 ‘졸병’으로 입대해야만 했고, 팍팍한 군대생활은 탈영이나 총기사고의 충동에 빠지게 했다. 그러다가 별칭이 ‘백골부대’인 보병 제3사단 18연대 3대대 본부중대에 배속 받았고, 말로만 듣던 ‘철의 삼각지’ 철원의 남방한계선(철책)에서 정보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졸병’에게 ‘고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고 하찮은 말 한마디에도 즉각 실시 외에 변명의 여지는 있을 수가 없었다. 개인의 잘못이 전체기합(몽둥이 타작)으로 이어지는 날이 습관처럼 계속되었다.

이런 여건 속에서 졸병이 안식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는 민간인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바깥 교회의 예배시간이었다. 신앙심은 뒷전이라도 심신의 편안함은 누릴 수 있는 예배시간이 비신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시 육군본부는 ‘전군 신자화’란 야심찬 목표를 내걸고 말단부대에까지 채근을 했다.

어느 날 우리 부대원들도 군종사병의 손에 이끌려 연병장에서 ‘합동세례’를 받게 되었다. 군목은 장병 수백 명을 마당에 앉혀놓고 단상에서 기도로 세례를 베풀었고, 그 덕분에 우리에게는 ‘세례교인’ 딱지가 붙게 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고교 시절에 처음 성경을 접하고 군인 시절에 집단세례도 받았지만 정작 ‘믿음’이라고는 겨자씨만큼도 없었던 ‘엉터리(날나리) 교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다시 회사에 복직했다. 1980년 5월 캐나다(Canada) 기술연수를 마치고 월성원자력에 부임한 뒤로는 가까운 읍천교회 창립에도 참여했다. 집사 직분을 얻었고 아들딸은 주일학교에 등록시켰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할까. 교회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마음 한구석에서는 ‘마귀’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너 정말 세례 받았어?” 군대에서 받았던 ‘날치기 세례’ 기억이 마음을 괴롭혔다. 세례란 단어만 나오면 ‘가짜 세례교인’이란 말이 꼬리를 물었다. 성찬식에서는 “양심에 부끄럽지 않나?”하는 자책감이 가슴을 때렸다.

수년이 흐른 뒤 해결방책을 찾기 시작했다. 친구 다니는 교회에서 이실직고하고 세례를 다시 받을까? 고향 교회에서 새 신자 등록을 하고 세례를 받을까? 아예 딴 교단으로 이적해 신앙생활을 새로 시작할까…? 온갖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던 어느 날, 충남 공주 수련원의 특별수련회에 참석해 달라는 업체 관계자의 부탁이 들어왔고, 수련회 마지막 날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침례’ 프로그램이 눈에 번쩍 띈 것이다. 2013년 8월 3일 아침 6시, 야외풀장 속에서 목사님의 안수를 시작으로 침례 의식이 진행되었다. 몸이 완전히 뒤로 젖혀졌다가 되돌려지는 순간 거머리 같은 마귀의 존재도 씻은 듯 사라졌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던가. 하나님은 50여년 세월의 쳇바퀴를 돌리게 한 뒤에야 당신의 시간표대로 진정한 기쁨의 찬송이 터지게 하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사장·NCN 위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