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놀 줄 안다”
“여자도 놀 줄 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07 2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울주군 G초등학교 부근 지인의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 한마디를 들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인데 스킨십은 와 하노?” 물론 이 말의 주인공은 농담 삼아 한 말이었겠지만 그 여운은 제법 오래 갔다. ‘男女七歲不同席’이라면 일곱 살만 되면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 앉아서는 안 된다는 유교의 옛 가르침 아닌가.

보름 뒤 우연히 울산시청 1층 로비를 지나쳤다. 눈길 끈 것은 게시판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색 포스트잇(붙일 수 있게 만든 메모지). 알고 보니 ‘양성평등(兩性平等)주간’을 맞아 울산여성의 전화가 7월 1일부터 마련한 ‘양성평등 찰칵展’. 제사보다 젯밥이라고 정작 시선을 앗아간 것은 찰칵展(사진전)이 아닌 포스트잇展이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흠씬 패 줄 것 같은 여성들의 아우성(?)이 한 가득이었다.

<미디어> 쪽 요구는 익히 듣던 얘기가 대부분. “너무 폭력적·상업적인데, 청소년들도 보고 있어요.” “성(性)상품화 OUT!” “남녀차별 STOP!” “여성의 매력을 꼭 어필해야만 광고가 살아나나요?” “사람 얼굴을 소주병 광고 모델로 쓰지 마세요. 특히 여자연예인.” “예쁘고 날씬한 사람만 대접받는 세상, 싫어요.” <교육> 쪽은 글쓴이의 내면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바지교복, 입고 싶어요.” “여학생 여름교복, 치마를 반바지로!” “남자 교복은 반바지로!” “성폭력 예방교육, 자주 시켜주세요.” 이런 욕구도 들어가 있었다. “여학생도 쩍 벌리고 앉고 싶어.”

‘명절’ 난은 진솔한 하소연들로 넘쳐났다. “무서워요. 명절 보내고 오면 몸살이 납니다.” “왜 남자 어른은 명절에 음식 안 해요?” “명절 관습, 너무 복잡해요. 시간 많이 걸리고 일도 많아 힘들어요.” “명절, 부담 백배! 음식은 먹을 만큼만…” “음식은 엄마만 해야 하나요? 가족 모두가∼” “명절이 무서버. 남편들이여, 배려가 아니라 함께!” “남자도 전 부치자!”

<직장·회식 문화>에 대한 하소연은 귀담아들을 게 많았다. “술 못 마시는 사람은 회식이 두려워요. 술 권하지 마세요.” “건전한 회식문화, 음주 NO!” “억지 술도 이제 그만! 음주문화 바꾸자!” “남자가 술 못 먹어서 안주 먹는데, 그게 잘못입니까?” “술은 각자 따라 마시세요.” “아직도 회식장소에서 여직원이 술 따라야 하는 분위기, 곱표!” “회식은 줄여주세요. 퇴근하고 싶어요.” “자잘한 심부름 내가 다 한다. 신입의 서러움.” “남녀 임금격차 너무해요.” “남자라서, 여자라서… 그런 말 좀 자제합시다!” “오고가는 존중과 배려! 바뀌어야 할 직장문화!”. “상사들의 강압적 지시 근절!”

포스트잇의 주장은 자연스레 ‘양성평등’ 쪽으로 옮겨 갔다. “남자도 벌레가 무서워요. 여자도 전구 끼울 수 있어요. 우리는 같아요.” “아직도 취업의 문턱이 여자에겐 높아요.” “수당·임금이 다르니 직장은 남성 위주.” “여성, 남성이 아니고 능력에 따라 똑같이 평등하게 지급하면 좋겠다.” “남자, 여자 NO. 이젠 우리!” “요리도 남자, 여자 상관없다. 아빠도 설거지 할 수 있다.” 기어이 이런 말도 나왔다. “여자도 능력 있다.” “여자도 놀 수 있다.” “여자도 놀 줄 안다.”

<가정>을 지키고 싶은 희망사항에는 간절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아빠랑 놀고 싶어요. 일찍 오세요!” “남자여, 가정으로 와라!” “살림, 같이하자!”

양성평등 찰칵展은 울산시교육청(7.8~12)과 울산시청자미디어센터(7.15~19)로 자리를 옮겨가며 계속 열린다. 포스트잇 쪽지에 적힌 내용은 그때마다 달라질 것이다. 일행(一行)을 권한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