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귀신님-사랑은 들이대야 제 맛
오 나의 귀신님-사랑은 들이대야 제 맛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0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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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렇지 않지만 드라마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캐릭터는 대부분 웃음을 주는 주인공들이었다. 오래 전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최민수)부터 <명랑소녀 성공기>의 양순이(장나라), <옥탑방 고양이>의 경민이(김래원),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김선아)를 거쳐 <환상의 커플>의 상실이(한예슬)에서 거의 정점을 찍다시피 했다.

사실 상실이 이후에는 한 동안 드라마 캐릭터에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그 만큼 상실이라는 캐릭터는 헤어나기 힘든 존재였던 것. <환상의 커플>을 본방 사수하던 그 시절은 “드라마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발연기와 귀족 이미지로 평소 비호감이었던 한예슬이란 배우는 한 동안 최애(최고로 사랑스런) 배우로 등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영원하진 않았다. 2013년 말 ‘응답하라’시리즈 두 번째인 <응답하라1994>를 통해 등판한 쓰레기(정우)가 판을 뒤집어 버렸던 것. 구수한 마산 사투리를 장착한 쓰레기가 주는 웃음과 매력으로 인해 당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들썩했다. 나 역시 살면서 본 드라마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아직도 쓰레기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랬다가 최근에 다시 빠진 드라마 속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 바로 <오 나의 귀신님>이란 작품에서의 여주인공인 봉선(박보영)이다. 방영된 지 4년이 다 되어 가는 드라마인데 어쩌다가 우연히 보게 됐던 것. 귀염둥이 캐릭터로 박보영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드라마에서 박보영은 정말이지 ‘인간 여자 강아지’같았다.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어도 귀여움이 뚝뚝 묻어나는 외모인데 이 드라마에선 남자주인공인 선우(조정석)에게 마구 들이대는 역할이어서 그녀의 귀염은 초절정으로 치닫는다. 해서 한참 웃다보면 어느덧 자신의 몸이 녹아버렸다는 걸 느끼게 된다. 특히 남정네들은. 아마도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선우 역의 조정석이 아니었을까. 박보영의 초절정 애교 신공을 맨몸으로 직접 막아냈으니. 해서 본방 당시 그의 연기는 단순 연기가 아니라 현실연기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었다.

그런데 잠깐! 이 드라마 계속 보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작은 울림 하나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데 그게 바로 극중 봉선의 시도 때도 없는 들이대기가 결코 가볍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밌게 보다 문득 난 이런 생각이 들더라. 현실에서도 누군가를 좋아해서 들이대는 게 그렇게 쉬웠던가? 절대 아니다. 현실에서 박보영보다 더 예쁘고, 조정석보다 더 멋있는 남자라고 해도 그건 쉽지 않다. 그래도 사랑을 원하는지라 우리는 늘 상대방이 들이대주길 바란다. 그쪽이 덜 창피하니까.

영화 속에서도 봉선이 선우에게 마구 들이댈 수 있었던 건 어린 나이에 비명횡사해 음탕한 처녀 귀신이 된 순애(김슬기)가 빙의됐기 때문이다. 빨리 구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적의식도 있었지만 어차피 남들에겐 봉선으로 보일 거, 순애는 아무런 부끄럼없이 선우에게 들이댈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절대 기죽지 않는 순애의 들이댐은 꼭 그게 다는 아니다. 이젠 친구가 된 봉선에게 순애가 말한다.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사랑해. 네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들이댐은 결국 고백이다. 그래서 들이댐은 곧 사랑의 시작을 의미한다. 고백하는 순간, 확률은 늘 반반. 이뤄지거나 안 이뤄지거나. 그러니까 가능성은 항상 50%다. 무슨 일을 할 때 이렇게 높은 확률을 당신은 접한 적이 있는가. 게다가 용기내서 들이대면 자동으로 보험에도 가입된다. 거절당했을 땐 당장은 쪽팔리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추억이 되서 반짝반짝 빛이 나기 때문. 표현해서 후회하는 사랑은 없다.

출세, 성공, 벼락부자. 다 좋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이라는 걸. 일찍 절명해 처녀귀신이 된 순애가 살아생전 못해본 것 중에 가장 아쉬웠던 것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우주 공간의 웜홀(지름길)처럼 물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그 거리를 좁혀주는 마음 속 웜홀같은 것. 오죽하면 먼지들까지 사랑을 할까. 이곳에선 작은 먼지조차 혼자 있지 못하고 늘 다른 먼지와 붙으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사랑은 거부할 수 없는 인력(引力) 같은 것이다. 해서 <오 나의 귀신님>에서 순애는 사람들에게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야이 바보들아! 다들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좀 들이대! 사랑을 표현하라고!” 왜? 한 때의 열정이나마 불태울 수 있다는 점에서 끝남의 슬픔은 시작도 못한 슬픔보다는 좀 더 행복하니까.

2015년 8월22일 방영종료. 16부작.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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