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나눔’의 리더십
‘섬김과 나눔’의 리더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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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조개가 더욱 빛을 발하는 계절이다. 요즘은 어디서나 갑(甲)질을 하면 큰 코 다친다.

직장은 말할 필요도 없고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심지어 부모 자식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갑질 소식이 들려와 격세지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과연 어디까지가 갑질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갑질이 성립되려면 을(乙)이 있어야 한다. 사실 갑을 관계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왜 한국 사회는 노예 관계라는 말이 나올 만큼 유난히 더 심할까.

조선 시대의 관존민비에 뿌리를 둔 갑을 관계는 해방 이후에는 전관예우나 브로커라는 사생아를 낳았고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런 ‘을의 반란’이 반대급부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시위와 데모다. 지식인들은 작금의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시대정신으로 ‘증오의 종언(終焉)’을 제시하고 있다. 갑을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건 을뿐만 아니라 갑에게도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정의와 도덕이라는 관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나누는 성장과 혁신 차원에서 갑을 관계의 타파를 생각할 때다. 함께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중하고 예의바른 사람과 기꺼이 협업하려고 한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면 직장에서는 어떤 리더상(像)이 바람직할까. 예컨대 오너나 상사의 예의바름은 직원들에게 더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고맙다”고 말하기, 주의 깊게 경청하기, 부드럽게 질문하기, 미소 짓기, 가볍게 인사하기. 다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런 행동들이 그 회사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윗사람이 정중하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이 얕잡아 본다는 생각은 지극히 잘못된 판단이다. 도리어 정중함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높여준다. 자신보다 낮은 이들을 찾아 섬기는 것이 참된 리더의 당연한 책무다. 제조업의 메카인 울산에서 기업하는 분들은 깊이 새겨야할 덕목이다.

울총(울산 총각)으로 13년째 생활하면서 처음에는 주로 석유화학단지와 관련된 일들을 맡아 해오고 있다.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수도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석유화학산업을 고도화하고 재활성화하는 길이 울산의 밝은 미래를 향한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석유화학산업은 대부분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통합 파이프랙’ 구축 사업이나 ‘통합 물공장’ 같은 대형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중소기업들이 하나둘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 후론 석유화학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 내지는 상생협력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대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중소기업을 갑을 관계가 아닌 대등한 동반자적 위치에서 서로 존중하고 정중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왜 우리 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어른이 안 보일까. 그럴 때마다 유독 떠오르는 한 분이 있다. 소외된 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항상 낮은 자세에서 ‘거룩한 바보’로 살았던 故김수환 추기경. 평생 사랑과 나눔을 몸소 실천했던 이 시대의 어른이 선종하신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며 나눔의 삶을 전파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많이 소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섬기는 일이 많을 때 덤으로 얻게 되는 선물이다.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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