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 설립자’ 논란
‘울산대 설립자’ 논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30 1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란이 진행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 속설에 새삼 밑줄을 긋고 싶기 때문이다.

논란의 주제어는 ‘울산대 설립자는 누구인가?’이다.

며칠 전 서랍정리를 하다 문건 한 묶음에 시선이 꽂혔다. ‘묶음’이라 해서 대단한 양은 아니다. 서류 복사본 14장과 A4용지에 담긴 지인 A씨의 원고 2쪽이 전부다. 같이 발견된 학성이씨 문중의 ‘학성회보’ 호수와 발간연도는 건네받은 시점이 10여 년 전임을 알려주었다.

A씨가 지상게재를 기대했던 기고문의 제목은 ‘울산대학 설립자는 누구인가?’였고, 실제 설립자는 학성이씨 가문의 이후락 선생(HR)이란 것이 주장의 뼈대였다. 글의 앞부분 일부를 옮겨 적는다. “대학교육의 불모지였던 울산에 최초로 대학이 세워진 해는 1970년이다. 1962년 울산이 공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고급기술 인력 양성이 절실히 요구되자, 정부의 구상에 따라 영국 정부의 지원으로 울산공과대학 설립이 추진되었다. 이에 1969년 4월 8일 이후락, 이관, 이동철, 정주영, 김창원 등 5명의 이름으로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이 설립되고 초대 이사장에 이후락이 취임하였다.”

학성이씨 가문 출신 A씨에게 ‘울산대 설립자=이후락’이란 믿음은 확신 그 자체였다. “이리하여 이듬해인 1970년에 울산공과대학이 설립되어 첫 신입생을 모집하게 되었으며, …35년이 흐르는 동안 재단 이사장이 두 차례나 바뀌고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는 등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의 울산대학교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를 실망시켰다. 그의 눈에는 설립자가 엉뚱한 인물로 둔갑해 있었던 것이다. “울산대 본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산 정주영 회장의 흉상이다. 흉상 바로 밑 비문에는 ‘울산학교 설립자 아산 정주영’이라 쓰여 있다.”

그러면서 그는 물음표를 던졌다. “정주영 회장이 세계굴지의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울산에서 일으킨 분이고 오늘의 울산대가 있기까지 공로가 지대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울산대 설립자라기엔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유는 이랬다.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으로 취임, 7년간이나 울산대학을 경영한 분 대신 이사로 참여한 정주영 회장을 울산대 설립자라 하기엔 석연찮은 데가 있다. 정 회장을 설립자라 한다면 당시 참여한 5명의 이사를 모두 설립자라 해야 할 것이다.”

글의 흐름으로 미루어 A씨는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으로 취임, 7년간이나 울산대학을 경영한 분’이 이후락 선생이며, 정주영 회장은 이사 5인 중 1인일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는 2000년에 펴낸 ‘울산대학교 30년사’ 제1편 ‘울산공과대학의 출범과 성장’의 기록을 예로 들며 ‘초대 이사장 정주영’은 잘못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A씨의 신념은 기고문 중·후반부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그는 1969년 4월 8일자 ‘법원 등기번호 12호’를 증거로 내보였다.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이사의 성명과 주소, 대표권의 제한 난에 이사장이 ‘이후락’으로 돼 있는 사실을 들추어낸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교 7년 뒤인 1977년 1월 20일 이사장 이후락은 사임하고 동년 2월 19일 이사장 정주영이 취임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울산대 설립자로 ‘이후락’의 이름이 누락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후락 선생이) 돌아가신 후 후진들이 울산교육의 역사를 다시 기록할 때 그분의 공적에 ‘울산대 설립자’라는 내용을 왜곡됨이 없이 넣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지인의 글은 그러나 빛을 보진 못했다. ‘울산대 설립자=정주영’이란 문건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무렵 필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정녕 승자의 편인가?”

김정주 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