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원 생활 1년
구의원 생활 1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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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울산광역시 중구의회 의원으로 일한 지 1년이 된다. 의회 밖에서 보던 것과 안에서 겪는 일이 이처럼 격차가 큰 직업도 없어 보인다. 필자도 전에는 지방의원이라면 주민과 공무원을 우습게 아는 ‘갑질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 본 실상은 진정한 을이며, 쓸데없이 너무 바쁘다. 첫째, 각종 행사가 너무 많고 얼굴 알리는 것이 당선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인지 사람 모이는 곳이면 무조건 가고 본다. 둘째, 회의가 너무 많다. 일반회사에서는 회의시간을 줄이려고 서서 하는 회의, 화상회의도 있다지만 의회는 그렇지 않다. 이름도 생소한 의회와 구청의 온갖 회의부터 소속정당, 시민단체, 주민 모임에 이르기까지 참 많고도 많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정치풍토의 후진성이다. 구의원 1년차가 입밖에 낸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지난 6월 17일자 중앙일보 기사 중에서 <마약도 이런 마약 없다>는 제목의 기사-‘조훈현·제윤경·이상돈 국회의원이 여의도서 짐 싸는 이유’-를 대신 적어본다. 바른미래당 이상돈 의원은 “국회의원의 일상을 보면 너무 한심하다. 어느 나라 정치인이 아침부터 조기축구 하고, 기사식당을 돌고, 재래시장을 찾느냐”며 “미국도 지역구 유권자와 만나는 타운홀 미팅이 있지만 이건 유권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지역 현안을 토론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이러한데 혼자서 뛰는 일개 지방의회 의원이야 현재의 우리네 정치 그라운드에서 그저 헉헉거리며 뛰는 길 외엔 언감생심 불평도 못한다.

다음은 회의 얘기도 한마디 전하고 싶다. 필자가 구의원이 되기 전에는 울주군과 울산시교육청의 위촉 위원으로 활동해 보았지만, 크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다. 지금은 중구와 중구의회의 몇몇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특히 구청 관련 위원회는 그간 회의가 없어서 의견도 없지만, 몇 번 참석해본 경관위원회에 대한 필자 나름의 소회는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첫째, 위원회에서 다루는 심의 및 자문대상의 문제다. 이 내용은 중구 <경관조례> 제19조 3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특히 2호에서 규정한 자문대상 민간건축물은 <별표1>에 있다. 여기서 ‘울산우정혁신도시 내 건축물’이 자문대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다. 바로 이 내용 때문에 우정혁신도시 내 땅에 집을 짓는 건축주와 건축사들의 고통과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선, 혁신도시 내 소규모 민간건축물(이면도로변 높이 2∼3층 이내 주택)을 경관조례에 따라 일일이 자문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다. 나아가 건축의 공공성을 빌미로 민원인들의 재산권을 너무 과도하게 침해하는 일이다. 실제로 전국 10개 혁신도시 중 경관조례로 민간건축물의 경관에 대한 자문을 규정한 곳은 울산시 중구뿐이라고 한다. 사실, 울산시에서는 <우정혁신도시 지구단위계획>으로 대단히 상세하고 입체적인 도시계획을 정해두었기 때문에 중구의 자문은 옥상옥이다. 울산시의 우정혁신도시 지구단위계획에는 블록별로 건축물 용도·건폐율·용적률·높이·배치 및 건축선·형태 및 외관까지 세세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둘째, 위원의 전문성 문제다. 중구 경관조례 제20조에는 경관위원회의 위원 자격을 규정하고 있다. 3항 3호를 보면 ‘건축·도시·조경·토목·교통·문화·농림·디자인·옥외광고 등 경관계획 관련 분야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되어 있어서 관련 분야가 너무 넓다. 오히려 경관자문과 심의의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또, ‘디자인’ 분야 전문가에 대한 해석도 너무 애매모호하다. <세계미술사전>에는 디자인을 “모든 조형 활동에 대한 계획”,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전공을 나타내는 말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디자인대학이나 학부의 디자인 전공에 제품디자인·시각디자인·정보디자인·섬유디자인·실내건축디자인은 있어도 도시디자인·경관디자인은 없다. 미술관련 전문가의 참여에도 문제가 있다. 건축과 미술은 달라도 너무 다른 분야다. 예를 들어, 건물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가 있을 때 건축사가 “OO 화백, 건물은 그렇게 그리는 게 아니야”라고 한다면 코미디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건축사는 너무 저평가된 전문가 그룹이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국가면허시험을 거쳐 자격을 취득했고 오랜 실무경험을 갖추었음에도 “건축사는 9급 공무원의 밥”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공공연히 들린다. 건축행위가 워낙 사회적 영향력이 큰 분야여서 수많은 관련법규의 규제를 받고, 그 결과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사로 등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가 충분한 전문성을 인정했다고 보아야 하지만, 공무원과 일반시민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 특히 개별 공무원이 마치 자신이 대법관인 양 판례 같은 ‘행정례(?)’를 양산해서는 곤란하다.

구의원 생활 1년에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장하는 지름길은 결국 제도개선에 있다는 사실이다. 구의원도 공무원도, 유권자와 민원인도 각자가 ‘갑질’을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른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다했으면 한다. 그 노력이란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강혜경 울산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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