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의 일부가 된 ‘반칙’
경기의 일부가 된 ‘반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2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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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특히 축구경기를 중계할 때 아나운서나 해설자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반칙(反則)도 경기의 일부다.” 하도 여러 번 듣다보니 이젠 반론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기 아이를 둔 젊은 부모라면 문제가 다를 수도 있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포털사이트에 고민을 털어놓은 젊은 어머니가 있었다. “반칙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 저로선 풀기 힘든 수학문제 같은 느낌이에요.” 그러면서 답변을 기대했다.

답변자의 응수가 잠시 배를 쥐게 만들었다. “‘경기에선 반칙을 해도 되지만 네 삶의 목표에 다가갈 땐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열심히 하다보면 충돌이나 반칙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경기에 이기기 위해 일부러 반칙을 한다는 건 프로선수가 아닌 저로선 이해하기가 좀 어렵네요.…하지만 승리가 절실한 프로선수에겐 다른 문제겠지요. 그게 완전히 ‘나쁘다’고 규정짓기도 좀 애매하네요.”

그런데 ‘이해하기가 좀 그런’ 반칙 사건이 얼마 전 실제로 일어났다 해서 울산의 바다 한 귀퉁이가 연일 시끄럽다. 웃어넘길 정도가 아니라 뒤끝이 워낙 시끌벅적해서 걱정이 앞선다. 사건의 실마리는 5월 넷째 주말, 경북 상주에서 열린 ‘제21회 상주시장배 전국 MTB 대회’가 제공했다. 울산 A구 자전거동호인 사회의 SNS 공간에는 이 대회의 시상 결과를 놓고 입으로 하는 축구경기가 한창이다. 비난성 글과 역비난성 글들이 럭비공처럼 시야를 어지럽힌다.

처음 공을 차올린 비난 그룹에서는 상주MTB대회에 출전해 ‘중급여성부’ 2위를 차지한 A구 모 자전거동호회의 여성간부 B씨의 개인적 일탈을 겨냥해 소나기공격을 퍼붓고 있다. 주어진 코스를 완주(完走)하지 않고 잔꾀를 부린 사실이 사진에도 잡혔고, 따라서 2등 수상은 울산 이미지도 먹칠하는, 창피의 극치란 주장이다. 실제로 한국산악자전거연맹 홈페이지( kcfmtb.or.kr) ‘자유게시판’에는 “상주대회 기록 확인 부탁드립니다”란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앞선 선수들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절대 잡을 수 없는 시간차입니다.…비슷한 시간대의 남성선수들도 2위를 차지한 여성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구설수의 당사자인 B씨가 SNS에서 억울하다며 셀프 변호에 나섰다. “너무 황당해서 이렇게 문자 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가비 내고 상주대회에 참가했다가 주관 측에서 등수를 정해 상을 주길래 받아왔습니다.…(유언비어) 유포 1일 후 저는 대회 주관 측의 사과를 받고 최종판독과 관계없이 ‘이런 말 많은 상’은 필요 없다고 생각되어 입상 포기 의사를 전했으며…, 그 후유증 또한 개인 몫으로 안고 가겠으니 알아서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씨가 ‘대회 주관 측 사과’를 실제로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상을 포기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주최 측이 B씨 등 몇몇 구설수에 오른 대회 참가자들을 실격(失格) 처리하고 시상 내역을 다시 손질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B씨의 ‘입상 포기’ 선언 때문인지 그녀의 기록을 실격 처리한 때문인지 굳이 부연할 필요도 못 느낀다. 다만 우리 사회의 실생활에서 아직도 존재감이 살아있는 ‘반칙’이 필요악(必要惡)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심판의 오심(誤審)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던가.

그러나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비디오 판독(VAR=Value at Risk)이 축구는 물론 야구, 배구 경기 결과까지 뒤집어놓는 세상 아닌가. 대형 VAR시스템을 가동할 수만 있다면 A구에서 연장전이 한창이라는 ‘양심불량(良心不良) 시비’에 대한 판독 결과를 속 시원히 접할 수 있으련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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