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산책]자동차 부품산업의 ‘치킨게임’
[법률산책]자동차 부품산업의 ‘치킨게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2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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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게임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치킨게임’일 것이다. 이제 치킨게임이라는 용어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극단적인 분쟁으로 치닫는 경우를 일컬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1차 협력사와 1차 협력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2차 협력사 등 자동차업계 피라미드 내에 존재하는 회사 간의 분쟁에서도 이와 같은 치킨게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사례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재무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2차 협력사는 납품을 중단하겠다고 하면서 1차 협력사에 거액을 요구한다. 1차 협력사는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듯 협의를 진행하다가 2차 협력사의 대표이사 등 관련자를 공갈로 고소한 후, 형사사건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사안을 진행한다.

이들 사안은 정치권 및 언론에서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대표산업인 자동차업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슈인 데다가 ‘갑질’과 이에 대한 ‘을의 반란’이 가장 극적으로 등장하는 사례라는 점 등이 그 이유로 보인다. 그런데 위 사안에 대하여 자주 제기되는 주장은, 사인(私人)들 간의 분쟁에 국가 형벌권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민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차 협력사의 입장에서 민사적인 방식이 충분한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는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완성차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을 조립해야 한다. 그런데 모든 부품에 대하여 충분한 재고를 쌓아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하도급업체의 납품이 일정 기간 지연될 경우, 완성차업체의 생산라인은 멈추어 서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1차 협력사는 완성차 업체에 대하여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물론, 1차 협력사로서는 납품에 문제가 있는 하도급 업체에게 다시 그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세한 하도급업체가 이러한 책임을 지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차 협력사가 ‘공급중단’을 주장하며 부품생산에 필수적인 금형 등 동산을 은닉하거나 인도를 거절하게 되면, 1차 협력사로서는 일반적인 민사소송으로는 도저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민사소송에는 보통 1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법리적으로는, 가처분·공정증서·제소 전 화해 등 신속한 집행을 위한 제도들을 검토해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법원으로부터의 인용률이 낮다거나 제도의 본래 취지와 괴리된다는 등의 문제로 인하여, 이들 제도의 이용에도 난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를 민사적으로 해결할 방안이 아직까지는 불충분하고, 그 결과 국가 형벌권을 동원한 극한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그 전에 체결된 바 있는 기본계약서의 관련 규정들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자동차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게시하는 표준계약서를 일부 변형한 계약서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불가피한 사유로 인한 계약의 해지 및 그 절차에 관한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의할 경우, 통상 3개월 정도의 기간을 두고 거래중단 조건 등에 관한 협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미 파국으로 치달은 단계에 있는 양 당사자 모두에게 완전히 만족을 주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1차 협력사의 입장에서는 국가 형벌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상황을 전개시켜야 상대방의 백기투항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고, 2차 협력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생산중단을 무기로 사용해야 강한 압박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킨게임에서 두 대의 자동차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과 같은 파국을 막고, 당사자 모두 어느 정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자 모두 일보씩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당사자 간에 체결된 계약조건의 준수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출발점은 의외로 이미 눈앞에 있을 수 있다.

<류선재 고래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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