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장밭들·늪재
통도사 장밭들·늪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1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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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에는 백운암의 금샘과 은샘, 자장암의 금와수, 백련암의 백련옥수, 옥련암의 장군수 등 다양한 약수가 있다. 이렇듯 통도사 약수가 다양하고 유명한 원인은 통도사 창건 이전의 환경 ‘자연습지’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시대 자장 스님은 울주(蔚州)를 찾아 태화사(太和寺)를 창건하고, 양주(良州: ?良州→良州→梁州)를 찾아 통도사(通度寺)를 창건했다. 자장 스님이 마른 땅을 두고 구태여 습지를 선택해 금강계단을 세운 것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물’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통도사 금강계단 창건 이야기는 다른 사찰의 창건 연기 설화와는 달리 습지 설화로 전한다. 통도사 창건 이전의 환경은 넓은 습지였다.

통도사 주석 역대 노스님으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러하다. 자장 스님이 영축산 아래 길지를 택하여 금강계단을 세우려고 발원했으나 그곳에는 이미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스님은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으나 용들은 이를 거절했다. 스님은 지체할 수가 없어 버드나무 잎에다 ‘화(火)’자를 써서 그곳에 던지고 주장자로 휘저었더니 물이 끓어 용들이 날아갔고, 그곳을 정비하여 세운 사찰이 통도사였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아홉 마리의 용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오룡골과 삼동골이 통도사를 중심으로 좌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 마리는 늙어서 날아가지 못하고 현재의 통도사 대웅전 옆 구룡지에 머물고 있다고 전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분석해보면, 통도사의 창건 설화에 아홉 마리 용이 등장하고 스님이 버드나무 잎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개산(開山=통도사가 창건된 날) 이전의 자연환경은 넓은 습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도 구룡지의 수위는 삼백육십오일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어 습지임이 재차 확인된다. 그 영향으로 40여 년 전 출가 당시에도 통도사 계곡은 국계이음(?溪而飮=두 손으로 물을 떠서 먹음)할 수 있는 청정수였다.

호반새(노스님들은 ‘비새’ 혹은 ‘불새’로 부름)가 소나무 고목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웠다. 계곡 돌을 옮기면 두 집게발을 치켜들고 뒷걸음치는 가재가 쉽게 관찰되었다. 호반새는 가재를 먹이로 하며, 가재는 1급수의 맑은 물에 살기 때문에 청정수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

혹자는 통도사 절터를 ‘음터’라고 했다. 그 말 또한 터무니없는 헛소문은 아니다. 오히려 음터라는 말에서 습지를 메워 창건한 사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영축산 아래 각 암자마다 약수가 유명한 것은 습지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습지의 발달은 쉼 없이 솟아나는 용천수(湧泉水)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이유는 현존하는 장밭들과 늪재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서운암, 옥련암, 백련암, 자장암 주위에는 습지가 잘 발달돼 있다. 서운암 입구에 있었던 습지와 두루미 케이지가 있는 골짜기에는 현재 자생하는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옥련암 대웅전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장군수는 사시사철 수원이 마르지 않는다. 백련암의 백련옥수와 자장암의 금와수가 유명한 것은 뒤쪽 산 정상에 있는 늪재 주변 산지습지의 덕분이다. 장밭들의 장(長)은 ‘긴 것’ 즉 장자(長者)의 용(龍)이 사는 습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이름이다.

현재에도 매년 통도사에서 ‘단오절용왕제’를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하(寺下) 삼수리(三帥里)는 모두 이징석, 이징옥, 이징규 등 형제장군 삼장수(三將帥)의 탄생과 연결시켜 부르는 지명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 또 다른 설을 보탠다. ‘삼수리’는 공교롭게도 서운암, 옥련암, 백련암, 자장암 등 영축산 줄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옥련암의 장군수(將軍水)는 용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축산의 정기인 장군수를 먹고 자란 삼형제는 성장하여 삼장군이 되었다. 삼수와 물은 나눌 수 없는 관계로, 삼수 미나리가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은 모든 생명체를 성장·발전시키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물의 중요성을 모르고 물을 물 쓰듯 하다가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섰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망자는 이승에서 혹시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는 급수공덕(汲水功德)을 한 일이 있는가?” 망자는 말이 없었다. 염라대왕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망자는 깊은 물에 다리를 놓아 길손이 편하게 건널 수 있게 월천공덕(越川功德)을 하였느냐?” 망자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대왕은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망자에게 물의 중요성을 말하고는 이승에서 살도록 기회를 주었다.

급수공덕·월천공덕 전설은 모든 생명에게 중요한 물과 관련된 이야기다. 망자는 이승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물임을 강조했다. 이 이야기는 그 후 회심곡(回心曲) 가사에도 등장하여 물을 활용한 공덕을 장려하게 됐다고 전한다.

영축산에서 발원한 양산천은 자장동천을 지나 내리 반석(盤石)으로 흘러 호포에 이르러 황산강과 만난다. 어떤 자연이든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게 마련(山高谷深·산고곡심)이다. 깊은 계곡에는 맑은 청정수가 흐르게 마련이다. 지나가는 길손은 맑은 물을 두 손으로 움키고 마셔서 목마름을 해소한다. 불지종가 통도사가 그 일을 지금껏 실천하고 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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