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점만 찍은‘나라사랑’
[단소리 쓴소리]점만 찍은‘나라사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16 1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덕분에 상종가를 친다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이번 주말엔 꼭 봐야지 하고 롯데백화점 3층 상영관을 찾은 것은 지난 15일(토) 점심나절. 상영 시각이 2시 5분이면 참 어중간하다 싶어 두리번거리던 차에 동쪽 간선도로변에 무대가 꾸며진 백화점 광장이 시야에 잡혔다. 뙤약볕 속에서도 몇몇 사람들의 굼뜬 움직임이 포착됐고, 서남쪽 부스의 국방색 얼룩무늬는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무슨 행사가 열리고 있는 걸까?

호기심에 발길을 광장 쪽으로 돌렸다. 두 줄로 늘어선 12개 부스 사이 무대 장식에 적힌 글자의 나열이 행사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나라사랑 Thank U 페스티벌>. 아직 6월의 중간이니 ‘호국보훈(護國報勳)의 달’ 행사가 맞아. 한데 왜 보도자료가 안 보였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울산보훈지청의 두 줄짜리 보도자료는 행사가 끝난 지 한참 뒤에야 접할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청소년 동아리팀 공연을 비롯하여 군장비 전시회, 이달의 전쟁영웅 사진전, 6·25전쟁 음식 나누기 행사 등 보훈단체, 학생, 시민 등 1천여 명이 참석하여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놀라운 것은, 보도자료상의 관람객 수가 ‘1천여 명’이나 됐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랬나? 아무리 눈을 닦고 보아도 ‘가짜 뉴스’ 성격의 작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싶었다. 그렇게 단정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전 11시에 부스를 열어 오후 1시가 되기도 전에 철수준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햇볕이 너무 따가워 관람객이 드물었던 것도 또 한 가지 이유다. 불과 2시간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행사를 마쳤는데도 관람객이 1천 명을 넘었다니….

서둘러 철수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작업인부는 모른다고 입을 닫았다. 중간간부인 듯한 보훈지청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예산이 얼마 안 돼 그런 겁니다.” “예산이 얼만데요?” “겨우 500만 원입니다. 작년 울산대공원 행사 때도 3시간만 하고 끝냈습니다. 다른 기념행사는 예산이 좀 충분한 편이지만….”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예산이 넉넉하면 길게 하고 쥐꼬리만 하면 짧게 하는 건가? 차라리 전이나 펴지 말든지…. 뒷맛이 씁쓸했다. ‘의미 있는 행사 같으니 한번 와서 구경이나 하고 가시라’고 적었던 문자메시지를 황급히 지워버렸다. 지인에게 급히 안 보내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몇 몇 커트는 휴대전화로 찍어둔 덕에 흔적이나마 챙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허술해 보인 부스도 인상적인 부스도 영상으로 남았다. ‘이달의 전쟁영웅 캐리커처 사진전’, ‘울산미용예술고 美 나눔 봉사단 재능기부’…. 그중에서도 제일 북적거린 부스는 ‘육군7765부대와 함께하는 군(軍)장비 전시회’가 아니었나 싶었다. 하지만 보훈지청의 조기철수 작전은 시민들의 관람욕구를 물리적으로 막은 꼴이 됐다.

‘호국보훈’의 이름 아래 진행된 이날의 행사는 ‘적당히 얼버무려 놓은 비빔밥’ 느낌이 짙었다. 그리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양산지역까지 포함된 ‘우리고장 현충시설’(울산 20곳, 양산 4곳), 울산 이야기가 쏙 빠진 ‘4·19민주혁명 특별사진전’과 ‘대한독립운동가 13인’이 대표적이었다. 그나마 시선을 빼앗은 것은 ‘울산출신 독립운동가’ 8인의 사진. 이 가운데 박상진 의사, 최현배 선생을 제외한 여섯 분은 흐릿한 옛 사진으로, 그것도 허리를 굽혀야만 대면할 수 있을 뿐이어서 분간조차 하기가 힘들었다. 예산이 모자란다고 ‘점만 찍고 만 듯한’ 나라사랑 행사. 전국적으로 다 그랬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보다 나은 정부, 따뜻한 보훈>,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라는 구호가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보훈당국은 당장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