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연구실’
잊지 못할 ‘연구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10 2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25년간 연구실을 사용해온 나는 정년이 되어 내놓았다. 당분간 출강은 하지만 학교의 사정이 있어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내놓을 강의시간과 연구실,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깊이 정들었던 나의 케렌시아를 생각하니 그 환영(幻影)을 매몰차게 지울 수가 없다.

정년 후 연구실은 따로 만들지 못했다. 만들 필요도 없거니와 그러한들 구속되는 감이 들어 그럴 생각이 없다. 어디든 가서 앉아있으면, 그곳이 연구실이고 창작실이고 고뇌의 장소가 된다. 아담한 호숫가 카페든, 내가 좋아하는 잔디공원의 호젓한 벤치든, 현대풍이 감도는 대형서점이든 가리지 않는다. 시끄럽지 않은 조용한 곳이라면 그곳은 곧 나의 연구실이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생각이다. 삶의 ‘기분’이 강렬히 번쩍이고 빛나면 그곳은 바로 최고의 자리가 된다.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멋진 공간이니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펄럭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앞에 보이는 곳이 잔잔한 호수라면 백조의 마음이 될 것이고, 그곳이 초록빛 잔디언덕이라면 한 마리의 까치나 참새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바로 앞에 펼쳐지는 데가 신간서적으로 넘쳐나는 대형서가라면 책 속의 테마를 마음껏 비행하는 주인공이 되리라. 조용한 사찰의 뜰이라면, 고요와 참선의 자아가 되어 생로병사를 두루 섭렵한 석가의 마음이 될 것이다. 또한 그곳이 비록 검푸른 파도가 철렁대는 바닷가라면 새까만 몽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의 연구실은 참 재미난다. 연구실 한구석에 조그마한 정원을 만들어 나만의 자연인이 되겠다고 선포한 적이 있다. 어느 땐가 교내에 자작나무 군락이 몇 군데 무리지어 있었다. 그런데 눈이라곤 거의 오지 않는 남쪽도시 울산에 자작나무를 심으면 쉽게 자라지 않을 듯했다. 시베리아 벌판의 산속에서 흰곰과 같이 자라야할 나무가 이곳으로 옮겨 심어졌으니 결국 고사해버렸다. 벌목거리가 된 자작나무가지를 주워다 예쁘게 자르고 엮어, 조그마한 나만의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늘 푸르게 보이라고 인조 나뭇잎까지 붙였는데 의외로 멋진 ‘정원연구실’로 변모됐다.

나의 연구실에 꽂혀있는 서적은 제본으로 된 것이 많다. 한때 외국의 도서관에서 진귀한 책을 빌려 조금씩 복사하여 제본해둔 것들이다.

꽂혀있는 서적 중에는 『언어생활』(chikuma)이라는 월간잡지가 있었다. 창간호에서부터 종간호까지 무려 436권이 진열되어 있었다. 평상시 여기저기 일본의 고서점가에 들러 조금씩 모아둔 귀중한 언어 잡지책이다. 두껍지는 않지만 원어로 된 책이어서 일어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최고로 생각하는 자료다. 특히 ‘녹음기란’이라는 코너는 내가 즐겨 애용했던 테마. 1951년 11월(1호)부터 1988년 3월(436호)까지 언어의 현상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동경역 창구에서 승객과 주고받는 대화라든가, 소고기덮밥 집에서 주고받는 대화 등 일상생활 속 그들의 언어표현 양상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비록 음성은 아니지만 녹음된 음성을 하나하나 문자화한 것이어서 그 당시의 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현장감 있는 말이다.

정들었던 나의 연구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비록 누군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그곳은 보통의 장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취감과 즐거움이 깃들어있고 고통과 시련이 서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외국어 문자들이 여기저기 뛰어놀고 있을 그곳, 거기에 비록 내가 없더라도 아무 번민 말고 편히 뛰어 놀라고 말하련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