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제의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그득하고, 그 명분의 주제어는 회사가 약속했던 ‘노사간 단체협약의 승계’였다. 회사는 10일자 사내소식지 ‘인사저널’을 통해 “단체협약 승계 약속을 뒷받침할 노사간 대화가 절실하다”며 노조더러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노조는 이 말에 귀를 막고 닷새째 부분파업을 이어갔다.
노조로서는 얄밉기 짝이 없는 말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노조는 현재의 사태가 결코 가상현실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 회사는 지금 볏단을 쌓듯이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고, 어느 순간 그 명분의 더미는 ‘비장의 무기’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노조 집행부가 지혜로운 사고체계를 지니고 노조원 전체를 배려하는 진심을 갖고 있다면 ‘자폭’이나 ‘공멸’의 길 대신 ‘대화’의 길을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매사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자칫 실기(失氣)라도 하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할 수도 있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결과를 자초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노조 집행부는, 겉보기에, 회사의 제의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 눈치다. 필시 더 큰 열매를 얻어내기 위한 장고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은 실전에서 얼마든지 현실적 상황으로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 진리다.
노조 집행부에 대화를 권하는 것은 회사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꼼수는 절대 아니다. 대다수 노조원들의 안녕, 특히 고용안정을 진심으로 기원하기 때문이다. 10일자 ‘인사저널’에서 회사가 냈다는 목소리가 있다. “당장 모든 것을 지키려 하다가 결과적으로 더 크게 잃을 수 있다”는 소리다. 회사는 또 “형식과 명분에만 얽매여 시간을 지체하기보다 무엇이 진정 조합원들을 위한 길인지 냉정히 되돌아보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사 쪽의 이 말에 노조가 반신반의 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만큼 노사간 불신의 골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설령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노조 집행부는 전체 조합원을 위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통 큰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 실천적 노력의 하나가 사측과의 대화 창구만은 닫지 말고 열어두라는 것이다. 사측도 통 큰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지혜를 구사해 보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태는 대화만이 진정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