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역사공원’에 대한 고민
‘박상진 역사공원’에 대한 고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0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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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광복회 총사령으로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었던 고헌 박상진 의사. 울산시민들의 가슴에 격조 높은 자긍심을 심어준 박 의사는 지금 북구 송정동 생가 뒤편 ‘박상진 역사공원’에서 동상(銅像)으로 거듭날 날짜만을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박 의사 주변에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긴 것 같아 안타깝다.

고민은 역사공원을 둘러싼 몇 가지 잡음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 잡음들은 동상의 어디가 어떻다거나, 부조가 초라해 보인다거나, 몇몇 태극기의 모양새가 좀 그렇다는 말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그 많은 잡음들이 하나같이 설득력이 있는 것들이어서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도대체 어떻게 해 놓았기에…’ 하는 생각에 며칠 전 두어 차례 현장을 찾았다. 한번은 금석학의 대가를, 또 한 번은 조형예술학의 대가를 모시고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답사 결과 ‘잡음’ 성격의 지적들은 거의 대부분 ‘합리적 의심’에 근거하고 있었다. 다음 지적사항들은 박상진 역사공원에 대한 애정이 깊거나 전문성이 예사롭지 않은 분들의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물론 서로의 시각이 반드시 일치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시공사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이 상태대로 물려받아선 안 된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일치했다. LH라면 울산 혁신도시 조성공사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시민들의 마음에 못질까지 한 업체라고 보는 시민들도 더러 있기에 모종의 선입견이 작용했을 법도 하다.

전문가 A박사는 동상의 얼굴이 향하는 방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상의 시선이 ‘치우친 북쪽’을 향하고 생가와 등진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北(북)’은 지리학상 삶[生]과 등을 진 역상[死]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또 고헌의 생가를 방문한 기념으로 인증사진을 찍으려 해도 동상의 얼굴 방향 때문에 종일 역광(逆光)이 생겨 기념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 없다고도 했다. A박사는 또 동상의 제호를 세로 한글로 ‘고헌 박상진 의사’라고 새겼을 뿐 ‘像(상)’자를 빠뜨린 것은 동상의 기본조차 모르는 비상식적 행위라고 꼬집었다. 그는 “아무리 기부채납이 예정된 동상이라 해도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고 개탄하기도 했다.

동상의 오른손에 든 태극기 모양새는 고헌의 기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고, 태극기 한 쪽 4괘(四卦)의 건곤감리(乾坤坎離) 순서가 잘못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끄집어냈다. 乾 즉 ‘三’자 모양의 괘는 깃대에 바짝 붙이는 게 옳은 이치인데도 고헌의 오른손에 쥐어진 태극기 앞 쪽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전문가 B박사의 지론도 새겨들을 만하다. B박사는 공원의 바닥돌과 동상좌대의 색깔이 역사공원의 위엄과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바닥돌을 검정색상으로 처리하고 특히 부조가 새겨진 가벽 윗면을 곡선으로 처리한 것도 역사공원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진 역사공원에 애착이 많은 C씨는 ‘강복회 강령’을 돌에 새긴 글 가운데 ‘일절(一切)의’란 표기는 ‘일체의’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不遠復(불원복) 태극기’(=대한제국 말기, 의병장 고광순[1848~1907]이 사용한 태극기로 천안 독립기념관에 소장)가 가벽 공간에 끼워 맞추느라 가로로 길게 처리한 것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고 했다.

LH의 기부채납 이전인 6월 14일, ‘고헌박상진의사추모사업회’가 이사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앞서 지적한 여러 문제점들이 진지하게 논의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박 의사 주변의 고민을 덜어줄 응분의 조치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하다.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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