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라는 자화상-기생충
기생충이라는 자화상-기생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06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기생충' 한 장면.
영화 '기생충' 한 장면.

 

서울서 직장을 다닐 때 원룸 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 전에 얹혀 지냈던 반지하의 친구 자취방이 한여름 국지성 폭우로 침수되면서 부모님께 손을 좀 벌려 학교 근처에서 전세로 작은 원룸을 얻었던 것. 원룸이라지만 단층 건물이어서 사실 원룸 같지도 않았다.

그 돈이면 지방에선 괜찮은 원룸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서울은 역시 비쌌던 것. 다만 신축이어서 깨끗하긴 했는데 문제는 햇빛이 아예 안 들어왔다는 점이다. 창문이 있었지만 따닥따닥 붙은 옆집 벽에 가로 막혀 밝은 대낮에도 불을 켜야만 했었다.

나란히 이재민이 된 후 같이 살았던 친구는 얼마 후 결혼을 해서 원룸을 나가게 됐고 그 친구가 나가고 나니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문을 열면 복도가 아닌 바깥과 바로 통하는 그런 집이다보니 퇴근해서 들어와 불을 켜면 가끔 곱등이나 그리마(돈벌레), 바퀴벌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이름까지 지어줬는데 곱등이는 ‘베키’, 화려하게 생긴 돈벌레는 ‘엘리자베스’, 시커먼 바퀴벌레는 ‘매직 존슨’이었다.

그런데 존슨은 부끄러움이 많았다. 불을 켜면 바로 “촤라라”하면서 싱크대나 침대 밑으로 잽싸게 숨어버렸다. 해서 복지부동의 베키와 엘리자베스는 빗자루나 받침 같은 것으로 잘 유인해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지만 존슨에겐 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의 사체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존슨은 당시 내 집 기생충 가운데 가히 최강이었다.

이런 추억을 갖고 있다 보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기택(송강호) 일가족이 글로벌 IT기업의 CEO인 박사장(이선균) 저택에서 몰래 술파티를 벌이던 중 그의 아내인 충숙(장혜진)이 내뱉은 바퀴벌레 대사였다.

또 직접 겪었던 탓에 후반부 폭우로 인한 반지하 침수 장면에서도 깊이 감정이입이 됐었다.

전원이 백수로 반지하에 살던 기택 가족에게 어느 날 희소식이 날아든다. 장남인 기우(최우식)에게 고액 과외자리가 들어온 것. 가난해도 가족애는 넘쳤던 덕에 기우는 잔꾀로 여동생 기정(박소담)을 먼저 박사장 막내 아들인 다송(정현준)의 미술 교사로 취업시킨 뒤 식모와 운전기사까지 내쫓고 엄마인 충숙과 아빠인 기택을 들여앉힌다. 숙주와도 같은 박사장 저택에서 기택 일가족의 기생이 시작된 것. 그런 어느 날 박사장 일가족이 캠핑을 떠나게 되고 기택 가족은 집이 비는 틈을 타 저택에서 몰래 술파티를 벌인다.

그 때 마치 자기 집인 양 으스대는 기택에게 충숙은 이렇게 비꼰다. “그래봤자 띵동하고 초인종이라도 울리면 놀란 바퀴벌레처럼 촤라라하고 숨으려 할 걸.” 실제로 그 일은 일어나게 되고 기택 일가족은 바퀴벌레처럼 숨기 바빴다. 20여 년 전 내 작은 원룸에 기생했던 존슨처럼.

하지만 난 그 장면에서 그 때 그 원룸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 동안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자주 건드리며 직격탄을 날렸던 봉 감독 특유의 거대담론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니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살아 꿈틀댔기 때문. 그랬다. 그 때 그 기생충 존슨은 이제 나였다. 또 당신이기도 하다. 당신이 재벌이나 성공한 CEO 일가가 아닌 이상.

사실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구조는 규모에서 차이만 날 뿐 대부분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로 묘사할 수 있다. 대다수의 갖지 못한 자들은 소수의 가진 자들에게 기생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월급이 됐든 기부가 됐든. 안간 힘을 써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는 것도 삐딱하게 보면 좀 더 나은 기생충이 되기 위함이다. 임원 기생충, 부장 기생충, 과장 기생충, 대리 기생충, 평사원 기생충까지 CEO일가가 아닌 이상은 다들 마찬가지. 기생충들에겐 진실도 숙주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다. 숙주처럼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그들이 숙주를 향해 남발하는 단어는 딱 하나. “Respect!(존경합니다!)” 영화 속에서 박사장에게 보내는 기생충들의 외침이기도 하다.

4년 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돈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은 마음에 난 장사를 시작했고 쫄딱 말아먹은 뒤 재기를 위해 사촌 형 도움으로 서울 종로에서 노점을 했었더랬다.

속된 말로 꼬꾸라진 인생이 바닥까지 친 셈. 그 무렵 난 봉고차에 팔 물건들을 실고 우연히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을 지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뜬금없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화통이 터져 나오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영화 후반부에서 기택의 뜬금없는 폭력도 아마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적어도 그때 내 몸에서도 기택 일가족의 냄새가 났던 건 분명할 거다.

서울 생활 하직하고 고향에 내려오니 눈에 띄게 좋은 점이 세 가지가 있더라. 부모님을 자주 볼 수 있다는 점과 이곳엔 바다가 있다는 것. 또 서울에서는 그 흔했던 노숙자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도 좋았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어렵다면 그 차이를 안 보는 게 차라리 마음 편하다. 그래서였을까. 빈말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그냥 시골에서 조용히 농사 지으며 살고 싶어지더라.

2019년 5월30일 개봉. 러닝타임 13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