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달동(達洞), ‘달(達)’의 의미
남구 달동(達洞), ‘달(達)’의 의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0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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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達洞)’은 달리(達里)와 함께 사용되는 지명이다. 달동의 한자 ‘달~’을 왜 하필 ‘달(達)’로 썼을까? 달은 무슨 의미일까? 지명 유래에 관한 기존의 자료에서 그 의미를 찾아본다.

먼저 울산 지명의 바탕이 되는 『울산지명사』(울산문화원, 1986, 111쪽)부터 보자. “달(達)의 지명 상에 나타나는 본뜻은 산악(山岳)이라 한 것이었으나 뒤에 내려오면서 산하의 평지라는 뜻으로도 변하였다. 그러므로 달동(達洞)은 문수산(文殊山)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남산(南山) 12봉을 이루었고 이 가운데의 명산 은월봉(隱月峰)의 산 아래에 자리 잡은 평지의 마을이라 하는 뜻을 가진 것이다.”

다음은 『울산남구지명사』의 달동(達洞)-달리(達里) 지명 편(남구문화원, 2009.71쪽)을 보자. “달동의 전신이다. 여기서 ‘달(達)’의 지명 상에 나타나는 본뜻은 산악(山岳)이라 한 것이었으나 훗날 ‘산하의 평지’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달동(達洞)은 문수산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남산 12봉을 이루었고, 이 가운데의 명산인 은월봉(隱月峰) 아래에 자리 잡은 평지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것이다.”

끝으로 남구 ‘달동 행정복지센터’의 우리 동 소개에서 지명 유래에 관한 기록이다. “숙종 46년(1720)에 무둔리와 곶지리로 갈라져 있다가 고종 13년(1876)에는 곶지동의 달일 마을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은월봉의 산 아래에 자리 잡은 평지마을이란 뜻에서 달동(達洞)이라 하였다. 달동(達洞)은 남산 12봉의 끝봉인 은월봉 아래 자리 잡은 평지 마을이란 뜻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앞에서 인용한 세 자료의 공통점은 달동을 ‘평지마을’이라고 풀이한 점이다. 세 자료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울산지명사』를 근본자료로 인정하고 인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달동을 ‘평지마을’이라고 추측한 기존의 설을 무둔(無屯), 수달(水?), 무논(水畓)이란 세 가지 이름의 재해석을 통해 달동이 ‘평지습지마을’을 뜻한다는 설을 제기하려 한다.

먼저 ‘무둔(無屯)’이다. 달리 혹은 달동이 1720년부터 1801년까지는 무둔리(無屯里)란 이름으로 불렸다. 무둔은 ‘듬벙’을 말하고 듬벙은 ‘물웅덩이’라는 뜻이다. 무둔은 ‘무덩기 땅’ 즉 습지의 음역(音譯)이라고 본다. ‘둔기(屯基)’는 ‘무’ 즉 ‘물’이 생략된 습지 지형을 말한다. 이는 ‘둔기천’에서 확인된다. 비슷한 용례로 태화강 둔치란 말의 ‘둔치’ 역시 둔기와 같은 의미라고 본다.

물듬벙은 물웅덩이이다. 굳이 한자로 표현하면 ‘무둔(無屯)’이 된다. 태화강 둔치(屯峙)와 둔기(屯基)마을, 둔기천의 둔기(屯基)는 모두 물과 관계가 있는 물웅덩이가 그 바탕일 것이다. 물웅덩이를 ‘무덩기’ 혹은 ‘무딩기’라고도 한다. 한자로 기록되면서 환경적 현상인 소택지(沼澤池)라 쓰지 않고 소리를 빌어 무둔기(無屯基)로 기록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이때 ‘무(無)’는 ‘물’의 와음(訛音)을 그릇되게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예전에는 ‘무둔’ 혹은 ‘물’이 생략된 채 둔기(屯基)로 쓰기도 했다. 울주군 삼동면 둔기마을과 둔기천이 본보기 사례다.

다음은 ‘수달’이다. 수달은 족제빗과 포유동물로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수달은 태화강 백리에 걸쳐 출몰하고 있다. 바다에 사는 해달은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울산바다에서 서식하며 모피는 토산물로 공물을 하였다’고 전한다.

해달(海獺)과 수달(水獺)이란 이름에서 ‘달’은 ‘달(獺)’과 ‘달(?)’ 두 한자를 함께 쓴다. 수달(水獺) 혹은 수달(水?의 ‘수(水)’자에서 물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수달의 ‘달(?)’ 역시 한자부수 ‘견(犬)’을 떼어내면 ‘달(達)’이 되고 ‘물’을 의미한다.

여름철새 백로(白鷺)에서 보듯이 ‘~로(鷺)’란 글자에서 ‘로(路)’는 ‘물’을 의미하고 새 ‘조(鳥)’자와 함께 어울리면 ‘물새’가 된다. 수달과 유사한 용례이다. 마지막으로 ‘무논’이다. 무논은 물이 늘 채워져 있는 논을 말한다. 수전(水田) 혹은 수답(水畓)이란 표현을 함께 쓴다. ‘물논’의 물이 ‘무’로 바뀐 ‘ㄹ탈락’ 현상으로, 발음이 같은 한자 ‘무(無)’로 기록되었다고 본다.

달동을 과거에는 ‘달리’와 ‘무둔기’로 불렀으나 후대에 지명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평지마을’로 여기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 중심에는 문수산에서 이어진 남산 은월봉이 있고, 그 아래에 자리 잡은 평지마을이란 뜻에서 ‘달리’로 부르게 됐다고 짐작되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는 그런 추측이 기정사실로 굳어져 인용이 반복·답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명사 연구에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다양한 설이 존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체성을 제대로 찾으려면 객관적인 연구와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평지의 대표적 지형은 ‘습지’다. 그런 관점에서 옛날 달동의 자연적 환경에 대해 기존의 추측 ‘평지마을’에서 한걸음 더 나아나 ‘평지습지마을’로 재해석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여하간, ‘달동’이란 지명 해석에 있어 물과 연관성이 있는 ‘습지’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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