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 강의 잔물결’
‘도나우 강의 잔물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6.0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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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 하면 서정적 느낌이 먼저 와 닿는다. ‘다뉴브!’ 하면 낭만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경쾌한 리듬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Blue Danube)은 ‘빈 왈츠의 왕‘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음악거장 요한스라우스2세(1825-1899)의 작품이고, 애잔한 동유럽풍의 왈츠 ‘도나우 강의 잔물결’(Little Waves of Donau)은 루마니아 왕국의 초대 군악대 총감독 이바노비치(1845~1902)의 작품이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은 다뉴브(Danube)니 도나우(Danube)니 하는 강(江) 이름의 유래다. 둘 다 음악으로 더 유명해진 같은 강의 다른 이름이다. 독일 바덴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러시아 등 10개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유럽 제2의 강’(길이 2천850㎞)으로, 예부터 유럽 수상교통의 요충지였다. 독일에선 도나우(Donau), 불가리아에선 두나브(Dunav), 헝가리에선 두너(Duna), 루마니아에선 두너레아(Dun?rea), 러시아에선 도나이(Donai)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강 이름을 딴 왈츠 가운데 특별히 마음이 가는 곡이 있다. 이바노비치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이다. 이 곡의 선율은 지구촌 곳곳으로 스며들어가 있다. ‘프랑스 영향을 받았으나 애수를 띤 특유의 선율은 동유럽의 분위기 지녔다’는 평도 따른다. 미국에서는 편곡을 거쳐 ‘애니버서리 송(Anniversary Song)’이란 이름으로 패트 분(Pat Boone)이 부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국내에서는 유럽이 주 무대였던 재즈가수 나윤선과 ‘2인조 포크 듀오’ 김사월X김해원이 ‘리메이크’로 불러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도 있다. 그래도 감이 안 잡히는 분이 있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로 통하는 일제강점기 윤심덕의 노래 ‘사(死)의 찬미’를 한번 떠올려 보자. ‘도나우 강의 잔물결’ 멜로디를 차용한 이 노래는 당시 한창 앞날이 기대되던 일본유학생 극작가이자 그녀의 유부남 연인이었던 김우진이 가사를 붙인 ‘최초의 대중가요’로 알려져 있다.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돈도 명예도 내 님도 다 싫다> 이 비운(悲運)의 청춘남녀는 끝내 1926년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오던 배 위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져 함께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은 다음날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는 물론 ‘도쿄아사히신문’에서도 대서특필로 다뤄졌다.

그로부터 67년.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현해탄’이 아닌 헝가리의 ‘도나우 강’이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서 큰물로 흘러넘치고 있다. 시공(時空)이야 엄연히 다르지만 ‘비극적’이란 공통분모는 닮은 데가 있다. 우리 국민의 아까운 목숨을 스무 여섯이나 삼키고도 도도하기조차 한 도나우-다뉴브 강! 내면에 단조(短調, minor key)를 비수처럼 품은 이 강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답거나 푸른 강이 아니고, 더 이상 서정적이거나 낭만적인 잔물결도 아니다. 그저 심술 가득한 노도(怒濤)나 다름없을 뿐이다.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간직한 채 이국의 차가운 강물 속에서 아직도 잠들고 있을 그분들이 부디 고운 모습으로 되살아 돌아오기를 삼가 기도드린다. 무심한 도나우 강의 수중고혼(水中孤魂) 신세이기를 감연히 거부하고 하루속히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 안기게 되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는다.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눈시울이 앞을 가린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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