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 인간의 위대함이란-‘왕좌의 게임’
[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 인간의 위대함이란-‘왕좌의 게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3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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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초강력 스포일러가 담긴 글이니 시즌8까지 다 보신 분들만 읽으세요.

미국드라마의 절대 강자였던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얼마 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11년 시작된 시즌1부터 올해 시즌8까지 장장 8년간의 대장정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매 회당 1시간으로 잡아도 70시간이 넘는다. 아직 안 봤다고 하니 “행복하겠다”는 이미 봐버린 오랜 친구의 충격적인 추천에 끌려 내가 보기 시작한 게 2015년이었으니까 그때부터 한 해의 중요 이벤트 가운데 하나는 <왕좌의 게임> 새 시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드라마가 영화보다 좋은 건 행복의 길이가 좀 더 길다는 것. 사실 난 판타지 장르 최고의 작품으로 늘 <반지의 제왕>을 꼽았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래봬도 지조는 좀 있는 편.

다만 <왕좌의 게임>은 판타지물이면서도 현실적이라는 점이 좀 더 매력적이다. 가상의 웨스테로스 대륙 전체의 통치권을 쥔 철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7왕국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인 <왕좌의 게임>은 사실상 중세 유럽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야한 장면들이 수두룩해 성인판타지물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실적이다. 그런데도 상상 속의 존재인 용이나 백귀 등이 등장하면서 입체적인 판타지물로 거듭나게 된다.

캐릭터도 <반지의 제왕>보다 한층 입체적인데 선과 악의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캐릭터들이 수두룩해 현실성을 더한다. 또 극 중반까지 주인공이다 싶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여 버리는 예측불허의 스토리는 장조가 아닌 단조의 슬픈 매력을 마구 뿜어낸다.

다만 얼마 전 막을 내린 시즌8의 결말이 아쉽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그 해답은 <반지의 제왕>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시즌7까지 보는 내내 행복에 겨워하면서도 뭔가 부족한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의미(메시지)’였다.

그러니까 <반지의 제왕>이 극중 절대반지에 실제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을 함축시켜 그것이 파괴돼야 세상에 비로소 평화가 온다는 큰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면 <왕좌의 게임>은 시즌7까지 의미는 제쳐둔 채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한다는 점이 아쉬웠던 것. 하지만 시즌8에서 그 모든 살육의 원인이었던 철왕좌를 드로곤(용)이 녹여버림으로써 <반지의 제왕>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됐다.

실제로 원작소설을 집필한 ‘조지 R.R 마틴’ 옹은 평소 <반지의 제왕>과 원작자인 ‘J.R.R. 톨킨’ 옹을 존경했고, 그래서 철왕좌에 꼽힌 검 중에 하나는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아라곤(비고 모텐슨)의 검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원작 소설이 아직 완결되지 않아 그러한 결말에 원작자인 마틴 옹의 뜻이 담겼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 통보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일찍이 스위스 역사학자인 ‘부르크하르트’ 옹께서도 말했었다. “권력은 누가 행사하든 그 자체가 악”이라고.

일명 ‘용 엄마’인 데너리스(에밀리아 클라크)의 인격 변화도 그러한 메시지를 위함이라 생각하면 무리수란 생각은 별로 안 든다. 데너리스는 시즌1에서 친오빠인 비세리스(헤리 로이드)가 눈앞에서 죽을 때도 평소 자신에게 못됐게 대했다는 이유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보였었다.

원래부터 똘끼가 조금 있는 여자였던 것. 용이지만 딱 봐도 아이큐 100은 넘을 듯한 드로곤은 결국 철왕좌에 대한 집착이 엄마(데너리스)를 죽였다는 생각에, 천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죽인 존(킷 해링턴)이 아닌 철왕좌를 향해 불을 쐈던 게 아닐까. 앞서 엄마랑 존이 뽀뽀하는 것까지 유심히 지켜봤으니 아마도 존이 일찍 죽은 드로고(제이슨 모모아)를 대신해 새아빠가 될 거라 믿었겠지. 아무튼 <반지의 제왕>에서도 절대반지는 용암에 녹아 사라진다.

그랬거나 말거나 난 <왕좌의 게임> 전 시즌을 보는 내내 인간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했더랬다. 이 방대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니! 비록 인간이란 존재가 바이러스를 닮은 오만한 환경파괴자라 하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에서는 신(神)과 동급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방대한 세계관을 가진 <왕좌의 게임>에서 작가인 마틴 옹은 신이었고 웨스테로스 대륙에서 펼쳐진 대서사시에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하나가 됐다.

해서 “모두를 단결시키는 건 서사다. 훌륭한 이야기보다 강력한 건 없다”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티리온(피터 딘클리지)이 마지막회에서 브랜(아이작 햄스터드 라이트)을 민주주의라는 새 시대를 열 첫 왕으로 추천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브랜은 시즌1 1화에서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진 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마법사가 되어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모두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그는 바로 역사였다.

원래 우주란 건 온통 지루하기만 한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우리 인간들의 이야기로 인해 비로소 ‘우주대서사시’가 되었다.

드넓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더라도 인간이란 존재가 진정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2019년 5월19일 방영 종료.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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