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헌역사공원 이대로는 안 된다
고헌역사공원 이대로는 안 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30 23: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에도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가 있다. 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가 그 주인공인 바, 서슬 푸르던 일제 식민지배를 뛰어넘고 대한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안중근과 허위, 김구 등 기라성 같은 분들과 같은 반열의 인물이다. 물론 울산에는 또 다른 독립운동가가 많이 있다. 서훈자만 해도 백 명에 가깝고, 미서훈자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올해는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울산시의회와 울주군의회에서도 항일독립운동 기념에 관한 조례안이 발의되었다는 소식이 무척 반갑다.

필자는 독립운동 현창시설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다. 지역마다 인물 현창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이 반가웠다. 안동의 경북독립운동기념관과 청송의 의병기념관, 부산의 민주공원은 의혈 선인들을 함께 기리고 있어서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고헌의 의형인 신돌석 장군을 기리는 충의공원과 의제인 김좌진 장군의 백야공원도 둘러보았다.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만해 한용운, 의암 손병희도 그렇다. 윤동주 생가에서 알게 된 그의 외숙부 규암 김약연, 고종이자 친구인 송몽규에 대해서는 깊이 천착도 해보았다.

이런 현창시설들을 둘러보면 참 가슴이 벅차다. 우리가 기려야 할 독립운동가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맙기 때문이다. 한 인물을 기릴 때 생가는 물론 동상과 사당, 묘소와 묘비, 기념관, 기념비 등이 같은 공간 안에 두루 갖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헌 의사의 경우 같은 공간 내에 겨우 생가 하나만 보전하고 있으니 늘 송구하고 민망하기만 했다. ‘박상진호수공원’, ‘박상진로’, ‘고헌초등학교’ 등의 명칭은 고무적이다. 내친김에 인근에 들어설 새 역사(驛舍)도 ‘박상진역’으로 정해진다면 고헌 의사에게 진 부채의식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참으로 반가웠던 것은 고헌역사공원 조성계획이다. 송정동 일대의 구획정리사업을 LH공사가 맡으면서 약 9천여 평의 부지 제공과 역사공원 조성까지 책임을 진다는 협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필자는 고헌 후손과 선대부터 세의가 있기도 하지만 사고체계가 유사하여 많은 교감을 하는데, 고헌 현창사업은 더욱 그렇다. 두 사람은 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는 내내 생가의 본래 모습이 훼손될 것 같아 무던히도 걱정했다. 한때는 울산의 인물을 망라한 공원이 될 것이라는 소문에 애를 태웠기에 고헌역사공원으로 확정되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반가움이 지금은 실망감으로 가득하다. 아니 실망감을 넘어 분노의 감정까지도 감출 수가 없다. 바로 역사공원 내의 고헌 동상 때문이다. 생가 둘레의 지형도 많이 좋아졌고, 주변에 들어서는 고건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 완공을 기다리던 차에 동상과 주변 조형물들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바라본 동상은 지사 풍모와는 전혀 딴판의 모습에다가 신체 비례도 맞지 않았다. 고헌 증손에게 이게 왜 이렇게 진행되었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 비판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상에 대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은 대강 이러하다. ‘신체 비례로 봐서 두상이 너무 크다, 얼굴 형상이 보통 사람에도 미치지 못한다, 광복회 총사령으로서의 단호한 결기가 보이지 않는다, 두루마기에 고무신 신고 태극기 든 모습도 어색하고 표정도 아니다, 동상이 서 있는 방향이 주 현충시설인 생가를 등지고 있고, 해와 달도 외면하고 서 있다, 공원 진입 방향에서 보면 등 돌리고 있는 모습부터 보게 된다, 부대 조형시설도 조악하고 기존 작품들을 무단 복사했다.’

왜 이런 모습의 조형물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름대로는 심의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파이로트 모형의 동상을 심도 있게 검토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5월 9일에 시청 대강당에서 가진 고헌 박상진 의사 서훈등급 상향조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깊은 관심을 보이던 박병석 시의원이 ‘5분 발언’을 통해 문제를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그 동안의 고헌 추모사업은 책자 발간, 방송 조명, 학술회의, 뮤지컬 등이었지 실질적인 추모공간 확대는 생가 지정 이후 이번 역사공원 조성이 처음이다.

고헌역사공원이 이래서는 안 된다. 만인에게 존숭 받아야 할 인물을 이렇게 예우하면 안 된다. 고헌기념사업회나 고헌 후손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다니 말이 되는가. 설령 심의, 발주, 검수 등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결과물은 낙제점이다. 미리 둘러본 시민들도 무척 실망했을 것이고, 후손도 최근 몇 달 동안 냉가슴을 많이 앓았을 것이다. 이대로 운영권을 넘겨받으면 안 된다. 준공이 늦어지더라도 조잡한 조형물은 고쳐야 한다. 특히 두상 부분은 새로 만들고, 동상이 해와 달을 품고 생가를 바라보며 서 있도록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정호 고헌박상진의사기념사업회 이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