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예약문화가 정착되려면
올바른 예약문화가 정착되려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2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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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약속을 하며 살아간다. 인간 대 인간, 혹은 인간 대 사회 간에 이루어지는 약속은 인간관계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다. 약속과 합의, 이에 따른 이행,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우리는 신뢰와 관계를 쌓고 동시에 가끔은 신임을 잃게 되기도 한다. 수많은 약속 중에서도 가계나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약속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계약’이라 부른다.

최근 노쇼(No-Show) 때문에 여러 서비스업계가 골치를 앓고 있다. 노쇼는 예약을 했음에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예약부도 행위를 말한다. 주로 항공업계에서 예약과 발권을 마치고도 탑승 수속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하다가 최근에는 예약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서비스업계에서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요식업이나 미용업과 같이 개인사업체로 운영하는 경우엔 피해가 막심하다. 잇단 노쇼로 폐업하는 식당도 상당하다. 2017년 자료에 따르면 외식업 분야의 예약부도율은 20%에 달하며, 외식업을 포함해 의료, 미용, 공연, 고속버스 5개 부문 서비스업종의 매출손실은 4조 5천억원이 넘는다. 간접비용을 포함하면 8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노쇼는 사업장 경영뿐만 아니라 펑크가 난 예약시간에 해당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손님에게도 큰 피해를 끼친다. 이런 손해는 특히 의료업계에서 두드러진다. 수술이나 검사를 예약해두고 통보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 위급환자가 발생한다면 그들에게 돌아갈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017년 7월과 8월 두 달 동안 14개 국립대병원의 외래환자 예약부도율이 평균 13%를 웃돌았다. 이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물질문화의 변화에 비해 비물질적, 정신적 문화 요소의 변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혼란을 문화지체 현상이라 한다.

한 사회의 문화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포함해 형성되므로 양자 간의 격차로 사회적 부조화가 발생한다. 노쇼 또한 이런 현상의 한 사례다. 근래 서비스업계에서 예약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대부분 전화 한 통으로 예약을 하지만 최근에는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나 어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O2O(online to offline) 예약 서비스도 아주 용이해졌다. 그러나 노쇼와 같은 몰지각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의식이 결여되고 뚜렷한 대책마저 없어 큰 골칫거리다.

노쇼를 근절하기 위하여 예약보증금이나 위약금을 받는 업체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식당에서 예약보증금을 받을 경우 소비자가 예약을 하지 않거나 예약보증금을 받지 않는 식당으로 가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권고보다는 이를 강화하고 강제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법제화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노쇼 대책으로는 선(先)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고객의 개인정보를 미리 요구하는 방법, 혹은 수차례 노쇼를 한 고객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소비자로 하여금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게 하므로 자연스레 예약부도율은 낮출 수 있으나 단기적인 관점에서만 유용할 뿐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문화와 의식 부족이다.

조선일보 조사에 따르면 고객 200명 중 80%가 예약부도를 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취소하는 과정이 번거롭거나 취소 상황이 민망하고 사유를 설명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즉 사업자와 고객, 인간 대 인간의 약속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약속을 하고 이를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의식수준은 남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고칠 수 있다. “나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각자가 약속의 무게에 대해 책임지고 행동하는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올바른 예약문화 개선이 이뤄질 것이다.

이일우 ㈜유시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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