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즈음에
영화제 즈음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2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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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나는 파리다>라는 인도 영화를 봤다. 조금 과장된 듯한 설정에 중간마다 나오는 노래와 춤, 뮤지컬 형식이 많은 인도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한 영화였다. 분명히 예전에 극장에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누구와 어떤 계기로 봤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영화의 중반부쯤 남자 주인공은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 후 파리로 환생하여 자신을 죽인 이와 사랑하는 여인의 곁을 맴돌며 온갖 일을 겪고 만드는 내용이다. 앵앵거리는 파리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도 잘 표현했고 가상이지만 파리의 시각으로 본 세상의 면모가 꽤 잘 나타나 흥미로웠다. 시점을 달리하니 평범한 장면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자신을 죽인 인간을 이리저리 약 올리며 앙갚음하는 장면에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문득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럴싸한 설정과 개연성이 풍부한 줄거리에 마음을 빼앗겼던 기억이 났다. 기억의 물꼬를 트자 영화를 봤던 때의 상황이 연이어 나왔다.

아는 이들과 부산 국제 영화제 때 본 영화였다. 영화제 개막작이라서 꽤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영화 관람을 마친 후 일행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감상을 나눴던 것까지 떠올랐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내 삶의 한 장면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그 일행을 다시 만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를 정기적으로 보는 모임도 하고 영화 감상평을 적기도 했는데 근래 영화를 본 기억이 아득할 만큼 멀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봐도 감동이 생기지 않았다. 영화를 애써 골라도 감흥이 미진했다. 그런 일이 잦다 보니 점점 영화관을 찾지 않았다. 굳이 개봉관을 쫓아다니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거나 방송매체의 VOD 서비스로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은 것도 한몫을 했다. 그런데도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종종 봤다. 또한 영화 관련 뉴스는 여전히 흥미로운 관심거리이다. 칸 국제 영화제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니 <나는 파리다>라는 영화를 본 것은 영화제 홍보 차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제 시즌을 틈타 관련 영화를 방영하는 예는 찾기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올해는 한국 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것을 주제로 어느 신문사에서 한국 영화 100편을 골라 실었다. 영화를 즐겨 봤던 시절과 추억이 떠올라 주의 깊게 읽었다. 백 편의 영화 중 내가 본 영화부터 눈에 띄었다. 제작 편수와 제작비가 나날이 늘어나는 영화판에서 살아남은 영화라니 괜히 대단해 보였다. 미처 챙기지 못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솟았다.

프랑스 도시 칸에서는 영화제가 한창이다. 우리나라 영화인들도 참석하는 영화 잔치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배우와 영화 관계자들 속에 우리나라 배우와 영화인을 만나는 것은 내심 뿌듯한 일이다. 사실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란 쉽지 않다. 해마다 수상을 점치지만, 우리나라 영화가 상을 받은 횟수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럼에도 해마다 이즈음에 들려오는 영화제 소식에 괜히 마음이 간다. 수상에 상관없이 축제를 즐기는 모양새라 더 그렇다. 다양한 색감과 독특하고 대담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드레스를 입고 한껏 뽐을 낸 배우들을 보기만 해도 좋다. 점점 이름을 모르는 배우가 많아지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탈 배우는 프랑스의 노배우인데 수상 전 구설수에 휘말렸다는 소식이다. 오랫동안 영화판에 몸담은 그이지만 삶의 이력은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스크린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번 칸 영화제에 초청 받은 작품은 국내 개봉을 하지 않은 영화에서 관객을 끌어 모으는 중인 영화까지 다양하다. 현지 상영에서 기립 박수를 받고 영화에 쏟아지는 심사평이 좋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영화는 역시 극장 스크린에서 봐야 제 맛.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은 꼭 극장에서 보리라 다짐한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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