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역 태극종주 길에서
영남알프스 역 태극종주 길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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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보우’(維時保佑=시절 따라 돌봐주시고…). 기해년 실혜산 정상 시산제에서 기원한 것이 그대로 나타났다. ‘5월 18~20일 사흘간 연속 비’란 예보대로 18일은 낮에 비가 오더니 오후 8시 출발 무렵에는 거짓말같이 비가 그쳤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 이윽고 18일 밤 11시 49분, 옹강산으로 향하는 영남알프스 역 태극종주의 긴 여정은 오진리 들머리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옹강산(831.8m) 길은 첫 봉우리부터 급경사다. 옛날 아주 큰물이 나 모든 것이 물에 잠겼으나 이 산의 한 봉우리만 옹기만큼 물에 안 잠겼다 해서 ‘옹강산’이라 불렀다는 유래는 이 산이 된비알 산임을 짐작케 한다. 땀에 흠뻑 젖는 사이 도착한 곳은 ‘말등바위’. 바위가 말의 등처럼 완만하게 굽어 붙여진 이름이다. 뾰족한 모서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두 다리를 바위 양쪽으로 내리면 말등에 올라탄 모양새로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들머리에서 4.8km를 2시간 10분 만에 주파하고 나니 첫 봉우리 옹강산과의 조우다. 가파른 길을 그토록 힘들게 올라왔는데 허망하게 내려가다니…. 삼계리재(449m)까지 400m 남짓한 산길을 힘겹게 내려가다 다시 서담골봉(837m)으로 오른다. 눈이 스르르 감겨 일행을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서담골봉을 거쳐 천 미터가 넘는 문복산(1천14.7m)에 도착했다. 바람에 날린 철쭉꽃이 나무와 땅에 절반씩 피어 있었다. 이 산을 지나면서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보름날 하루 전의 둥근 달은 고마운 선물이었다. 학대산(963.5m), 신원산(895m)을 지나는 길가에는 은방울꽃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드디어 운문령. ‘쟁이 대장’이 준비해둔 커피와 과일을 간식삼아 잠시 쉬기로 했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시 배낭을 메고 촉촉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귀바위 상운산(1천113m) 가기 전 임도에서 멀리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 간월재 너머의 장엄한 일출은 덤으로 누리는 복. 서서히 날이 밝았다. 녹색 바다에 온몸을 고스란히 담그고 영남알프스의 주봉 가지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쌀바위를 거쳐 가지산 가는 길에는 철쭉과 바람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드디어 가지산(1천240m) 정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세찬 바람과 태극기가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중봉을 거쳐 석남재를 지날 즈음 멀리 문수·남암산을 중심으로 울산시내 전체가 구름바다(雲海)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찌 사진 찍기를 마다하랴. 석남재를 지나 능동산 가는 길 오른쪽은 신록이 짙은 초록으로 변하고 있었다. 태풍에 떼밀린 집채만한 녹색 파도가 바닷가로 끝없이 쫓겨 오는 듯한 이 장관! 능동산(983m) 정상을 향하는 계단 양쪽에서는 다래넝쿨이 춤을 추고, 정상에서는 철쭉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배내고개를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침식사와 마무리 산행을 함께할 산우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원봉사자와 동료들이 반겨주었다. 아침밥과 수박은 맛있고 달았다. 한숨 돌리고 나서 다시 배내봉(966m)을 향해 전진을 계속했다. 종주팀과 배내고개에서 합류한 산행팀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밝얼산(738m)까지는 내리막길. 산성산, 부로산으로 고도를 낮추며 이어간 산행은 언삼교에 이르러서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6.8km, 16시간의 대장정이었다.

경관을 자동차로도 감상할 수 있는 유럽의 알프스가 문득 생각났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산악열차나 곤돌라로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이 더없이 부럽기도 했다. 세계인들이 경치 아름다운 영남알프스를 케이블카나 산악관광열차로 오르는 날이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을까?



윤주용 울산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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