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법, 남편 죽인 아내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
울산지법, 남편 죽인 아내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
  • 강은정
  • 승인 2019.05.2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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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주취상태 습관적 가정폭력이 주 원인”검찰 “살인 고의 없다” 판단 상해치사 적용

“너의 술버릇이 가정, 직장,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악마로 만드는 기막힌 행동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으니 올바른 행동인가를 가슴깊이 느끼고 정신 좀 차려라. 애원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만류도 아들이자 A(49.여)씨의 남편 B(53)씨는 술에 빠져 폭력을 일삼았다.

급기야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 1월 30일. 이날도 어김없이 집에서 술을 마시던 남편 B씨는 아내 A씨가 동생집에 있다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격분하며 주방에서 흉기를 가져왔다.

아내 A씨는 남편 손을 잡으며 만류했다. 실랑이를 하다 남편에게 “죽으려면 너 혼자 죽지 왜 식구들을 괴롭히냐”라고 말하자 “내가 죽을께”라고 하며 아내에게 흉기를 건넸다.

남편은 “찔러라”라며 수차례 말하며 다가오자 아내는 밀어냈다. 그럼에도 욕설을 하며 다가오는 남편이 무서워 이 상황을 모면할 생각으로 흉기로 남편의 복부를 한차례 찔렀다.

겁에 질린 아내 A씨는 다급히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급차를 불렀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살인죄를 적용해 검찰 송치했지만 검찰은 조사과정에서 A씨의 상황, 다각도 수사로 살인의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상해치사죄로 기소했다. 검찰은 징역 4년을 구형했다.

선고재판이 열린 날. 이들의 20여년된 가정사가 드러났다.

A씨는 27년간 부부생활을 이어왔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술만 마시면 폭행과 폭언을 자주했다. 아들 둘에게도 “다 같이 죽자”라는 말을 자주하는 등 위협했고, 흉기로 벽과 방문을 칼로 찍는 등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B씨는 2006년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고,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폭력적 습관은 고치지 못했다.

아내 A씨는 생계를 위해 판매직원으로 일하는 등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아들은 이러한 가정사로 인해 심리 상담을 받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들은 상담사에 “어머니가 너무 고생한다. 아버지가 미워 죽겠다. 폭력을 참을 수 없다” 등 속내를 밝혔다.

둘째 역시 술에 취하면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는 등 A씨의 노력이 이어졌다.

아내 A씨는 “아들이 증인으로 나서 남편의 치부에 대해 말하는걸 보며 죄스러움과 미안함에 숨고 싶었다”라며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았다면 남편도 좋은 아빠가 됐을 텐데라는 아쉬움에 많이 자책했다”라는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탄원서는 이어졌다. 두 아들 역시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했다. 어머니를 용서해 달라”고 호소했다.

A씨의 어머니와 시댁 식구들도 “B씨가 평소 술을 자주 마시고 가족을 힘들게 했다. 며느리는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려했고, 시댁 식구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선처해 달라”고 수사기관과 재판부에 수차례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를 참작하고 A씨에게 선고했다.

울산지법 형사 11부 박주영 부장판사는 “사건의 구구한 경위를 떠나 사망사건이라는 결과가 중요하고 참담하다 할 것이지만 사정과 가족의 지속적이고 간절한 희망에도 남편 B씨는 주취 상태에서 가정폭력을 멈추지 못하고 폭력의 강도가 점점 강화된 것이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라며 “피해자 유족들이 오히려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구금기간 내내 남편을 사망하게 한 결과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라며 A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결과를 낳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평범한 가정에서 조차 개인의 음주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과에 이른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며 “가정폭력은 일반폭력과 달리 친밀함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심화되면서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피고인, 자녀, 사회의 건강과 안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거나 세대 간에 전이되거나 사회 비행과 범죄로 확대되는 등 폭력을 구조화시키는 결과를 돌아보고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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