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거랑·넓내’와 봄꽃대향연
‘큰거랑·넓내’와 봄꽃대향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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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태화강 지방정원은 다양한 꽃으로 장엄된 화엄의 세계다. 꽃양귀비, 작약, 수레국화, 안개초, 장미 등 셀 수 없이 많은 꽃송이가 기쁨과 탄성의 웃음을 짓고 있다. 걸음마다 놀랍고, 눈길마다 화려한 꽃들의 행렬이 번갈아 내 앞을 지나고 있다. 지난 주말, 울산 태화강 지방정원 16만㎡에는 ‘2019 태화강 봄꽃 대향연’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태화루 아래 용검소의 황용이 초록과 홍색의 물을 뿜어 축하하는 듯했고, 삼호산 파랑새는 ‘깨개객∼ 깨개객∼’ 소리를 내며 작은 비행기가 되어 하늘을 맴돌았다. 문수산 꾀꼬리도 그냥 있을 수 없다는 듯 노랫가락으로 부조에 동참했다. 낙안소 모치는 거름 지고 장에 가듯 기쁜 듯 수면을 박차 올랐다. 모처럼 감동과 거룩함이 함께 어우러진 시간과 공간이었다. 특히 정원 한가운데 버드나무 광장 뒤쪽 작은 연못에는 때맞춰 부화한 쇠물닭 가족 네 마리가 단정(丹頂·붉은 이마)으로 치장한 채 봄꽃 대향연에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에 홍가시, 장미 그리고 붉은 필자의 마음도 보태니 그야말로 정열의 축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태화들을 촘촘히 수놓은 정원은 홍등이라도 켠 듯 붉은 물결이 넘쳐나는 바다 그 자체다. 이번 봄꽃 대향연은 온 국민이 찾아와 즐길 수 있도록 태화강 지방정원을 국가정원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염원으로 충만한 의미 있는 꽃 잔치다.

태화강대공원은 도심성, 접근성, 다양성의 세 가지 장점이 하나로 합쳐진 멋들어진 공간이다. 세계적으로 찾기 드문 이러한 자연환경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울산시민들은 참으로 행복하다. 태화강이 중심을 이루기에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들고 시민들의 힐링도 같이 챙길 수 있다. 태화강의 무한한 발전과 확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태화강의 태화(太和)는 차별 없이 함께 어울려 하나가 되는 융합(融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좋은 의미를 간직한 태화강은 언제, 무슨 이유로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물론 그 속살은 <삼국유사> 황용사 구층탑 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태화강이라는 이름 이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히 남는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지명과 다리를 통해 함께 풀어보자.

먼저 길이와 넓이와 같은 강의 규모는 보통 그 주위에 형성된 산에 의해 결정된다. 많은 산들에 의해 강이 발달되고, 하류에 넓은 습지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태화강 역시 주위의 가지산, 고헌산, 백운산 등 다양한 이름의 산에 의해 형성됐다.

다음은 강의 이름이다. 태화강 백리에도 남천(南川), 대천(大川), 반천(盤川), 늠내, 큰거랑, 백천(白川)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 남천(南川)= 언양읍을 중심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언양을 통과하는 천(川)이다. 언양읍 중심부의 남쪽에 위치했다고 해서 ‘남천’이라 부른다. 낙동강에도 밀양 영남루 앞으로 흐르는 천을 ‘남천’이라 부른다.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라는 ‘영남아리랑’의 노랫말에도 이 말이 나온다.

△ 대천(大川)= 남천을 지난 가지산 쌀바위의 맑은 물이 구수를 지나면 강폭이 넓어지는 현상에서 ‘큰 내’ 즉 ‘대천(大川)’이란 이름이 붙게 됐다. 다리 이름 대천교(大川橋)에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 반천(盤川)= 대천으로 유유히 흐르던 강이 뜻밖에 둔기천을 만나 흠씬 놀라 유속이 줄어들면서 천천히 주위를 살피는 모양새를 연출하는데 이 천을 반천이라 부른다. 반천은 벼락수고개를 원 없이 밀어붙이면서 학춤을 추는 무동(舞洞)을 지나게 된다.

△ 늠내= 무동을 지난 청정수는 한 굽이를 크게 치면서 삼봉(三峰=곡연 옆 무학산 서쪽 봉우리의 이름)을 향해 흐른다. 대곡천과 만나는 일대가 ‘늠내’다. 늠내는 ‘넓은 내’를 줄인 ‘넓내’의 와음(訛音=잘못 전해진 글자의 소리)으로 짐작된다. ‘넓내’는 한자로 ‘광천(廣川)’이라 쓴다. 여기서 ‘대천’은 그 길이와 강폭을 아울러 일컫는 말로, 광천은 어느 한 지점이 넓은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 큰거랑= 강물은 늠내를 지나 삼봉산을 뒤로하고 진목을 거쳐 형제바위에 잠깐 앉긴 뒤 다시 망성을 지나 백용담을 찾아 구수소 이무기의 안부를 전한다. 그리고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천상에서 큰거랑이 된다. 큰거랑은 한자로 ‘거량(渠梁)’이라 쓴다.

△ 백천(白川)= 큰거랑을 지난 물은 낙안소를 찾기 전에 크게 굽이치는데 바로 그곳이 백천이다. 하얀 자갈이 눈부시게 흰색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흐르는 천(川)과 강(江)은 지나는 마을마다 이름이 달리 나타난다. 무슨 의미일까? 아마도 흐르는 물을 인식하고 바라보는 마을사람마다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울산시민이 함께하여 울산을 만들었듯이 태화강 역시 혼자 만들지는 못한다. 다양한 지역정서의 천(川)이 모이고 모여 융화된 결과가 태화강이다. 봄꽃 행사를 축하하면서 바라는 일이 하나같이 모두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지역사는 관점에 상관없이 후손에게 물려줄 중요한 유산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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