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감(語感)이 바꾼 이름들
어감(語感)이 바꾼 이름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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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나 시대의 변화는 이름의 변화를 재촉하기도 한다. 사람이름[人名]이 그렇고 땅이름·지방이름]地名]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이름만 따진다면 ‘항렬(行列)’ 운운하는 양반은 한글세대로부터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하늘’, ‘○슬기’, ‘□힘찬’ 하는 식의 ‘항렬 파괴’ 현상이 예사로 일어나는 것이 요즘 세태의 이른바 트렌드(trend)인 탓이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변화의 흐름은 지명에서도 얼마든지 엿볼 수 있다. 최근에도 그런 소식이 있었다. “19일 충주시에 따르면 금가면(金加面) 주민들은 이장단 등 42명으로 명칭변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음달 10일 발대식과 함께 주민설명회를 열기로 했다.”(5월 19일자 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충주의 박 기자는 추진위가 명칭 변경 찬반 조사를 벌여 전체 1천730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면 새 명칭을 공모한 뒤 주민투표로 결정짓기로 했다는 소식도 같이 전했다.

주민들은 면(面)이름이 왜 마음에 안 들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글이름으로 부를 때의 어감(語感)에 답이 나와 있다. ‘금이 간다’는 느낌 때문이다. 어찌 보면 미신적인 생각이다. 그렇다고 ‘미신적 생각’을 도외시할 수도 없다. 실제상황이 그리 됐노라 누군가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박 기자의 후속기사를 훔쳐보기로 하자. “금가면 행정복지센터는 ‘1980년대 면 중앙에 공군부대가 들어와 마을이 나뉘고, 중부내륙선 등 철도가 지역을 지나는 것도 명칭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충주시가 2014년, 금가면과 이웃한 가금면(可金面)의 이름을 ‘중앙탑면’으로 바꾼 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가금’이 날짐승[家禽]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이웃 금가면과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충주시가 2012년, 이류면(利柳面)의 이름을 대소원면(大召院面)으로 바꾼 사실도 흥미를 배가시킨다. ‘첫째’가 아니라 ‘둘째[二流]’라는 어감 때문이라 했다.

어찌 보면 충주시의 사례들은 시쳇말로 ‘약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선비의 고장’ 경북에는 그 이상 가는 사례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 대구 매일신문 권성훈 기자의 지론이다. 권 기자가 <예천 ‘지보’ 유래 듣고 보니, 뜻까지 그럴 줄이야…>란 제목으로 내보낸 2012년 5월 10일자 기사를 읽다 보면 그야말로 ‘포복절도할 희한한 동네이름들’을 무더기로 만날 수 있다. 지면 사정상 극히 일부만 맛보기삼아 인용하기로 하자.

“예천군 지보면 주민들도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생각해도 지명이 참…’” 이야기인즉슨 전국 8대 명당자리의 하나로 꼽히는 지보면(知保面)의 지형이 실제로 여성의 상징을 닮았고, 본디이름을 못마땅하게 여긴 주민들이 이름을 거꾸로 부른 것이 현재의 지명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본지 시사상식 코너 ‘텐’엔 대구·경북의 많은 독자들이 응모한다”고 운을 뗀 권 기자는 지명에 얽힌 그 밖의 이야기도 다수 기사 속에 담았다.

그는 “‘보내는 사람’에 적혀 있는 주소들이 절로 웃음을 짓게 하는 곳이 많았다”면서 대표적인 곳으로 김천의 ‘신음동’과 포항의 ‘사정리’를 예로 들었다. 다른 지방의 ‘포복절도 지명’ 사례로는 광주의 ‘방구마을’, 순창의 ‘대가리’, 인천의 ‘야동’, 경주의 ‘조지리’를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시대와 세태의 변천이 인명·지명 변경의 도도한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도 관심이 가는 데가 있다. 울산시민들이 울산 쪽으로 눈길을 돌려 동네이름, 지명 하나라도 부르기 쉽고 듣기 기분 좋은 것으로 바꾸어 나가면 어떨까?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立岩里)는 ‘선바위마을’로, 상북면 지내리(池內里)는 옛 이름 그대로 ‘못안마을’로 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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