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열 잔
커피 열 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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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손자 녀석의 돌잔치에 쓰려고 금은방에 구경을 갔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금은방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다니 입이 벌어진다. 이제 선진국이 되어서인가 아니면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자주 일어나서인가.

일을 다 보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 카페에 들렀다. 옆자리에 나이 지긋한 금은방 여주인 같은 사람이 혼자 들어와 앉았다. 외모 상으로는 분명 금은방을 크게 벌여놓은 여사장 같은 분위기. 카운터에 다가가 “저어기요. 커피 열 개요!” 주문이 약간 고압적인 느낌이 든다. 카운터의 아가씨가 “네…”하고 대답하고는 영수증 처리를 하고 재빠르게 커피를 로스팅한다. 서둘러 커피 열 잔을 쟁반에 하나하나 올려놓고서 “손님! 커피 나왔어요!”라고 부른다. 여인은 어리둥절해한다. “어? 커피 한 잔인데…. 커피 열 개(엷게)라고 했는데?” 카운터의 아가씨는 어이가 없는 듯 조금 전, 손님이 열 잔의 계산까지 했으니 응당 그렇게 생각한 거다. 단념한 듯 쟁반에 있는 커피를 수돗가에 모두 부어버리고 커피 한 잔을 새로 엷게 내놓는다.

손님도 확실치 않게 발음했고 주문 받은 아가씨도 ‘확인’을 분명히 하지 않았던 거다. 조그마한 일이 이렇게 난처한 일로 바뀔 줄이야! 평상시 그들의 생활 습관이 어떠한지 짐작이 간다.

한여름 어느 날, 중요한 일이 있어 서울시내 앰버서더 호텔에 급히 간 적이 있다.

택시를 잡아타고 운전기사에게 행선지를 알려주었다. “기사 아저씨! 앰버서더에 갑니다. 앰버서더에요!” “예!”하고 묵묵히 대답만 하고 출발한 기사. 한참 후 도착한 곳은 생뚱맞게도 앰버서더 호텔이 아닌 앰비씨(MBC) 방송국 앞이었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발음이 비슷하여 벌어진 황당무계한 또 하나의 해프닝이다. 단지 확인을 하지 않아 일어난 ‘불통’의 적합한 예다. ‘소통’이란 모든 일의 만병통치약이라 하듯이 불통의 원인이 이렇게 사소한 확인 부재에서 일어나다니 정말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단어(여기서는 ‘열개’ ‘앰버서더’)를 사용할 경우, 자기 나름대로 경험했던 것과 결부시켜 말하기 때문에 이런 황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말’의 의미란, 개개인의 경험과 결부되어 있으면서 개인의 마음과 머릿속에 항상 내재되어있는 거다. 그러나 사람의 경험은 결코 같지 않다. 같은 한사람의 경험이라 해도 매번 틀린다. 이와 같이 ‘말’은 대략적으로 이야기할 뿐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결부시켜 이야기하기 일쑤다.

나는 명태해물탕을 즐겨 먹는다. 지난주 어느 해물탕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명태의 양이 적어 돈을 더 주고 먹으려 했다. 추가로 한 마리 더 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여주인에게 진지하게 주문을 부탁했다. 냉큼 ‘안돼요!’라고 칼날같이 잘라 말해 버린다. 금방 부부싸움이라도 한 듯 손님의 응대에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이런 연유에선가 점심시간에 이렇게 텅 비어 있으니 자업자득이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유명프로 ‘골목식당’에 나가 한번 지적을 받아봐야 될 것 같다.

티베트 속담에서 말이란 부드러울수록 좋다고 한다. 부드러운 말은 특히 접객업을 하는 상인이라면 더더욱 그들의 생명과 같이 고귀한 재산이다. 근면하고 성실한 개그맨 유재석은, 평상시 예쁘게 말하기로 유명하다. ‘말을 할 때는 혀로만 하지 말고 눈과 표정으로 말하라’고 늘 강조한다. 소통의 중요성을 절실히 이해시켜주는 단적 표현으로 불통의 벽을 허무는 아름다운 교훈이기도 하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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