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난드로스와 나가세나
메난드로스와 나가세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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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무렵의 일이다. 인도의 서북부를 통치하던 그리스계 국왕 메난드로스(Menandros, 팔리어로는 미린다)는 플루타르크의 전기에도 묘사되었듯이 정의롭고 위대한 군주였다. 또한 그는 대화와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특히 피지배층의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에 대해 매우 궁금해 했는데, 누구도 그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고, 토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다 당대 인도불교의 고승으로 알려진 나가세나(Nagasena, 나선) 장로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나가세나 장로는 조건을 붙인다.

“대왕이여, 그대가 현자의 논으로 대론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왕자의 논으로 대론한다면 나는 그대와 대론하지 않을 겁니다.”

“존자여, 현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대체로 현자의 대론에 있어서는 문제가 해명되고, 비판 받고, 수정 받고, 반박 받지만, 그것으로 성내는 일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현자는 진정 이렇게 대론합니다.”

“또, 왕자로서 대론한다 함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왕자들은 대개 대론에 있어서 한 가지 일을 주장하고, 한 가지 점만을 밀고 나가며, 만일 그 일과 그 점에 따르지 않으면 ‘이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벌을 주어라’라고 명령합니다. 대왕이여, 왕자는 바로 이렇게 대론합니다.”

“좋습니다. 나는 왕자로서가 아니라 현자로서 대론하겠습니다. 존자께서는 마치 비구나 사미나 신도나 정원사와 대론하는 것처럼 마음 놓고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대론해 주십시오. 조금도 염려 마시길 바랍니다.”

“대왕이여, 좋습니다.”

나가세나 장로는 쾌히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동서양의 지혜가 불꽃 튕기는 대론을 시작한다. 메난드로스 왕은 헬레니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불교와 인도철학에 대한 236가지에 달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리한 질문을 하고, 나가세나 장로는 이에 대해 하나하나 비유를 들어가며 이해하기 쉽게 대답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한다.

“나가세나 존자여, 사람이 죽었을 때 윤회의 주체가 저 세상에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그럴 수 있습니까?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한 등에서 딴 등에 불을 붙인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한 등이 딴 등으로 옮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윤회의 주체가 한 몸에서 딴 몸으로 옮아감이 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가 어렸을 때, 어떤 스승으로부터 배운 시를 기억합니까?”

“그렇습니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는 스승으로부터 그대에게로 옮긴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몸이 옮김 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이들 간의 대화는 여러 세대에 구전되다가 한참 후대에 팔리어로 집대성된다. 이것이 ‘미린다 팡하’ 혹은 ‘미린다 왕문경’이다.

이천년이 넘는 까마득한 옛날에 대론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식도 세련되고 내용도 불교에 박식한 사람이건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로 쉽고 알차다. 특히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엊그제 지나간 ‘부처님 오신 날’에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다시 책을 꺼내 읽다 보니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화와 토론의 자세를 오늘날의 사람들도 한 번쯤은 읽고 본받았으면 해서 인용해 보았다. 제발 성내지 말고, 목소리 높이지 말고, 저급한 용어 쓰지 말고, 물리적 행사 하지 말고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차근차근 논리를 세워 설명하는 자세와 기술을 익혔으면 한다.

아울러 상대방의 이야기도 하나하나 인내심을 갖고 들어서 이해하고, 그러면서 필요하면 양보하고, 아니면 절충하는 그런 고급 소통문화가 필요하다.

오늘날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니고 이젠 덤덤하다 못해 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게 우리나라의 거친 소통 문화이다. 최근에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는 난장판 국회가 대표적이다. 저급한 표현과 욕설에, 이것도 모자라 흉기까지 동원한 물리적 충돌까지 난무한다. 어찌 국회뿐이겠는가. 노사관계와 같은 사회갈등 해소 방법에서부터 화목해야할 가정에 이르기까지 저급하고 거친 소통 문화가 우리나라 전반에 깊숙이 깔려 있다. 이천년 전의 메난드로스 왕과 나가세나 장로의 아름다운 대론 모습과 대비되며 내 얼굴이 화끈해진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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