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생각해본 ‘새로운 스승 상’
스승의 날에 생각해본 ‘새로운 스승 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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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승의 날’을 맞는다. 오늘로 38번째다. ‘스승’의 사전적 의미는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아버지처럼 우러러 존경하는 분’이라는 뜻에서 ‘사부(師父)’라 일컫기도 한다. 한국어의 조상어가 아프리카의 르완다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스승’이란 낱말의 어원을 르완다어의 ‘susumira’(=to tremble/떨다, 떨게 하다)에서 찾기도 한다. 말뜻도 ‘나를 매질하며 인간이 되게 훈육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어쨌거나 스승은 예로부터 어렵고 두려운 존재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우리 속담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르완다어 설’을 고집하는 이도 “옛날에는 스승의 모습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으니, 목 윗부분은 쳐다보지 말며, 말을 타고 가시면 옆으로 비켜서고 엎드린 채 얼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모두 ‘과거형 서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14일 본란에서 인용한 한국교총의 ‘교원 사기’에 대한 조사결과가 그런 예단을 갖게 한다.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한 교원이나 교권(敎權)침해 등의 이유로 ‘명예퇴직을 서두르고 싶다’는 교원이 열에 아홉에 이른다는 사실만 보아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는 길이 험해도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님인 법이다. 하늘같은 선생님을 학교 안에서는 ‘버르장머리 없는’ 일부 제자들이, 학교 밖에서는 ‘몰상식한’ 일부 학부모들이 ‘성적 올리는 기계부품’ 쯤으로 낮잡아 본다 해도 흔들림 없이 신성한 교직에 입문할 때의 초심을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한다. 또한 권위주의(權威主義)의 껍질을 과감히 뚫고나와 제자들로부터도 배운다는 마음가짐을 저마다 간직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학생들이 스스로를 낮추는 선생님을 보는 순간 ‘사표(師表)’의 참뜻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을 다시 맞으면서 ‘탈무드’에 있는 다음 구절을 울산의 모든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벗 삼은 친구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제자들에게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사제동행(師弟同行)’의 의미가 이 금언 속에도 있지 않을까?

스승의 날은 선생님들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날은 아닐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경직된 사제관계를 풀 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대전의 어느 대학 총장이 학교정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샌드위치와 음료 500인분을 나눠주며 격려했다는 소식은 그다지 나쁘게 들리지는 않는다. ‘경직된 사제관계 개선을 겨냥한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제38회 스승의 날을 맞아 각종 표창을 받은 유공 교원 227명은 물론 울산지역의 모든 교원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울산지역의 모든 교원들이 초심과 용기를 잃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스승의 상’으로 무장해주기를 희망한다.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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