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사와 북정동
해남사와 북정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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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원이 되어서 처음 맞은 불기 2563년 초파일이 지나갔다. 비록 일요일과 겹쳐서 공휴일 하루를 빼앗긴 느낌은 들었지만 휴일이어서 좋았다. 날씨도 그만이었다. 5월 초 기온으로는 다소 더웠지만 그늘에서 맞는 바람은 시원했다. 예년 같았으면 아침 일찍 통도사를 찾았을 테지만 동료 의원들과 중구 관내의 절을 찾았다. 찾아간 절에서는 일반 신도와 함께 이런저런 선거에 출마한 사람과 현역 정치인을 여럿 만났다. 그들과 함께 부처님의 자비를 바라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염원했다.

이번 초파일에 방문한 중구 관내의 불교사찰은 해남사, 백양사, 남천암 등 모두 7곳으로 멀리 신라시대에 창건된 곳부터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곳, 도심에 있는 곳과 산속에 있는 곳 등 저마다 분위기는 달랐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울산읍내의 불교사찰로는 백양사가 유일했다. 이외에 당시 울산 읍내에는 통도사 설교소라는 곳이 있었다고 하고, 1935년 12월에는 통도사 포교당을 읍내 북정동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 포교당이 지금의 해남사다.

처음 해남사를 찾았던 것은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웅촌 읍내에서도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 반은 족히 되는 시골 출신인 나는 울산 시내 고등학교로 유학을 하면서 제대로 된 문명세계를 처음 접했고, 제법 문화충격도 받았다. 그중 하나가 불교를 만난 일이다. 계기는 있었다. 좋아하는 작은 오빠가 대학생이 되면서 불교에 빠져들었고 나도 자연스레 불교와 가까워져 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선배들의 권유로 울산불교학생회에 참여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열리는 법회에 가기 위해 오후 한 시에 학교를 파하자마자 해남사로 향했다. 지금의 명륜로를 지나는 5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북정동 성안고가도로 부근에 내려 해남사까지 걸어 다녔다. 지금은 북부순환도로 위에 고가도로가 있지만, 그때는 명륜로를 가로질러서 성안동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고가도로가 걸려 있었다. 버스를 내려서 이곳까지 비탈길을 오른 다음 지금의 각단길과 도서관길을 잠시 걸으면 해남사 앞에 다다랐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해남사가 내게는 피난처였고, 안식처였다. 교통편이 나쁘던 그 시절 웅촌 본가에서는 통학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언양에 있는 큰오빠네에 얹혀살면서 매일 직행버스를 타고 다니던 그 통학은 힘들었다. 시내에 사는 친구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고, 야간자율학습 중간에 막차 시간에 맞추어 학교를 나서는 그런 나날이었다. 이런 환경 탓도 있었지만 공부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자존감도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주말마다 찾던 해남사는 피난 공간이었다. 오가는 길도 재미가 쏠쏠했다. 시내 친구집 구경도 가고, 호떡집이며, 어묵가게에서 군것질도 하고, 성남동 번화가도 걸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남동에는 지금은 없어진 태화극장과 천도극장이 있었고, 강변 버스정류장 앞에는 그랜드호텔과 오션호텔(나중에 코리아나로 바뀐다)이 있었다. 군청이 옮겨간 자리에는 동헌공원이 생겼지만 경찰서는 그대로였다. 얼마 전에 시립미술관 건축을 위해 헐린 중부도서관 건물은 그때는 생기지도 않았다.

해를 꼽아보니 어느덧 해남사를 처음 만난 날부터 올해까지 만 37년이 흘렀다. 강산이 네 번 가까이 변했는데, 해남사 주변은 소방도로가 이리저리 생긴 걸 제외하면 별반 변화가 없어서 좋다. 오랜 기억 속의 동네가 온전히 남아 있어서 반가움과 편안함을 안겨준 해남사 주변 모습도 다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지난 2006년에 지정되어 무려 13년을 끌어온 재개발사업이 이제 본궤도에 오르고 있어서 그렇다. 이웃 복산동에 이어서 얼마 전에 북정지구 원도심 개발사업도 승인이 났다고 하니 이제 이 동네도 철거되는 건 시간문제다.

해남사가 있는 북정동은 문자 그대로 600년 원도심이다. 그 긴 세월 동안 땅 위에 세워진 것은 사라지고, 다시 지어지길 반복했지만, 땅과 그 땅에 손금처럼 박힌 골목길은 600년 전 울산군의 치소가 이 자리에 설 때부터 생긴 것이다. 다행히도 성터 안쪽이 고층 아파트로 바뀌는 일은 피했지만, 성내의 600년 골목길이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해남사는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서일까, 왕년의 울산읍성 성 밖에 있지만 재개발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해남사를 온전히 지켜낸 것이 부처님의 힘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이 시대의 재개발사업, 그 결정이 올바른지 부처님만은 아실까.

강혜경 울산광역시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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