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밤샘작업 못하게 말려도, 한지공예가 재밌는 걸 어떡해?”
“자식들이 밤샘작업 못하게 말려도, 한지공예가 재밌는 걸 어떡해?”
  • 김보은
  • 승인 2019.05.1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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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생애 첫 한지공예 개인전 87세 송덕자
오는 18일까지 갤러리 한빛에서 인형전을 여는 87세 송덕자 어르신. 윤일지 기자
오는 18일까지 갤러리 한빛에서 인형전을 여는 87세 송덕자 어르신. 윤일지 기자

 

“내 새끼들 잘 있었나~” 1933년생 올해로 87세인 송덕자 어르신은 매일 이렇게 자신이 만든 닥종이 인형을 예쁘다 해준다.

하루 두 끼 먹으면 잘 먹었다 싶을 정도로 사업과 8남매 육아로 바쁘게 젊은 시절을 보낸 송 어르신.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지공예의 재능을 꽃피우고 생애 첫 개인전까지 열었다.

지난 10일 찾은 남구 옥동 갤러리 한빛에서는 송 어르신이 정성들여 만든 인형 30여점이 무심한 듯 행복한 표정으로 관람객을 반겼다.

평범한 인형 같아도 여간 공이 들어간 작품들이 아니다.

“쉬워 보여도 하루에 뚝딱 만들기는 힘들어요. 머리에 한 장 붙이고 나면 풀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이죠. 나이가 나이다 보니 힘들면 잠깐 제쳐 놓지만 새벽 5시 동이 틀 때까지 열중할 때도 있어요. 자식들이 밤 11시면 무조건 그만하고 쉬라고 말리지만 손에 한번 잡으면 멈출 수가 없어요.”

전시된 인형들은 8남매를 닮았다. 딸 다섯, 아들 셋과 그 가족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송 어르신은 곳곳에 구경 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고 책이나 사진을 참고하지도 않으려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인생 보따리 풀 듯 지금껏 경험했던 것들을 머릿속에서 꺼내놓고 있다.

대부분 자식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다 보니 “몇 십만원을 준다 해도 못 팔겠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20대부터 30년이 넘게 건축 자재업에 매달렸던 그가 한지공예를 만난 건 3년 전인 2016년이다.

친구의 며느리인 한국공예디자인 연구소 이영희 대표에게서 우연히 한지공예를 접하고 부터다.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다고 여겼지만 “내가 어떻게 이걸 만들었나” 스스로 놀랄 정도로 소질을 발견했다.

그는 “인형을 집중해 만들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들 이 나이에는 치매를 걱정하지만 일일이 손으로 뜯어 붙이다 보니 손과 머리를 끊임없이 쓰게 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나름에 힘든 점도 있었다. 얼굴을 만들 때 눈, 코, 입 하나 하나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원하는 표정을 얻을 수 있어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번의 수정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형태를 만드는 틀은 있지만 콧대를 높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그의 생각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지공예가 친환경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지공예는 재활용할 수 있다. 마음에 안 들면 뜯어서 수정하면 된다. 그래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다 생각대로 예쁘게 나오면 희열을 느낀다.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지다가도 그럴 때 다시 하게 된다. 때로는 너무 재미있어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묻자 그는 가족과 또래의 노년층을 위해 기원했다.

가족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또래들도 치매 걸릴까 걱정하지 말고 취미를 찾아 활력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욕심 부리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과 조용히 살고 싶어요. 제 자신보단 가족들의 건강만 걱정되네요. 또래의 사람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어요. 머리도 안 쓰면 상합니다. 나이 먹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저처럼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에 취미를 붙이면 삶의 질이 달라질 거예요.”

87세 송덕자 어르신의 행복 가득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인형전은 오는 18일까지 갤러리 한빛에서 이어진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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