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 <머루> 속의 자연생태
난계, <머루> 속의 자연생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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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알람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울린다. 무의식중에 폴더휴대폰을 더듬어 잡아서 폈다가 접는다. 간혹 깊은 잠에 빠져 놓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갓난 토끼새끼 배냇짓 하듯 놀라 일어난다. 10년째 새벽 3시에 맞춰져 있다. 눈은 뻑뻑하다. 갈수록 더함을 느낀다. 누운 채 두 손바닥을 세게 비빈다. 열난 손바닥을 눈 두둑에 갖다 대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눈물샘이 작동하는지 뻑뻑하던 눈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윽고 일어나 불을 켜면 인기척을 기다렸다는 듯 이처(二妻)를 둔 백봉 수컷이 홰를 치며 목청껏 울기 시작한다. 백봉의 울음소리는 매일 들어도 싫증이 안 나지만, 때로는 너무 가까이서 자주 울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백봉은 그동안 두세 평 남짓한 오죽(烏竹) 밭에 풀어놓아 길렀다. 그런데 5월이 되자 죽순이 여기저기서 솟아나 있어 혹 쫄지도 모른다 싶어 작은 닭장으로 옮겼다. 매일 시간 맞춰 대문을 나서면 수컷 딱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어슴새벽을 물리친다. 낮에는 뻐꾸기, 꾀꼬리가 번갈아 울고, 밤에는 소쩍새와 개구리가 인가 주위 무논에서 운다. 대낮에는 낮 꿩이 깃을 치며 울음을 우는 문수산 자락 천상에서 20여 년 전부터 반복되는 일상이다. 오죽 가지에는 ‘산초 눈’ 뱁새가 부화한 새끼를 일주일째 양육하는 중이다. 필자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끝나는 풍경이다.

난계(蘭溪)는 울산 출신 오영수(吳永壽) 선생의 호이고, <머루>는 선생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1년 전, 오영수문학전집 한 질을 지인으로부터 빌렸다. 다 읽고 돌려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했지만,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는 핑계로 책꽂이에 꽂아두고 있다. 사실은 전집 일곱 권을 빌려오자마자 짬나는 대로 읽기 시작하여 모두 읽었다. 돌려달라고 하면, 아직 못 읽었다고 거짓부렁할 참이다. 돌려주지 않고 소장하고 싶은 속셈이기 때문이다. 혹시 빌려준 지인한테서 전화라도 오면 가슴이 뛴다. 어쩌다 만나면 잊어버린 것도 같은데, 그래도 똑바로 눈을 못 맞추겠다. 언젠가 한번은 눈을 맞췄는데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안부를 묻기에 속으로 좋아했다. 그 후 만나면 책을 돌려달라고 할까 싶어서 일부러 피하고 있다.

난계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어떤 문장에서는 책장을 쉽게 넘길 수가 없다. 눈을 지그시 감고 문장 속으로 빠져든다. 한참을 흠뻑 젖어 있다가 깨어나기 일쑤다. 한번 젖어 보자.

“골짜기에서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머루>, “조무래기들은 신조차 내던지고 거미새끼같이 와르르 흩어진다.”<노파와 소년과 닭>, “밀 촛불이 간간 따딱따딱 튀어 살을 내고 갑창에는 귀뚜리 한 마리가 양 다리를 꺾어 세우고 긴 촉각을 떨고 있다.”<용연삽화>, “이날 밤 그의 아내는 부엌에서 별나게 오래도록 물소리를 내고 있었다.”<메아리>, “머리칼 같은 혈관이 살기살기 얽힌 분홍빛 바탕에 좁쌀보다는 조금 더 큰 까만 티가 딱 하나 붙었다.”<비파> 등…….

난계 선생은 자연생태주의자, 낭만주의자이자 세밀한 관찰자이다. △머루 △코스모스 △비오리 △나비 △여우 △제비 △후조(候鳥) △두꺼비 △까마귀 △개개비 △비파(枇杷) △수련(睡蓮) △소쩍새 △난(蘭) △산딸기 △새 △맹꽁이 △도라지꽃 △매미 △잡초와 같은 소설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중 <머루>에 표현된 문장에 젖어본다. ‘채마 울타리에 호박순애기를 훔치는 쇠고삐를 끌어당기면서’, ‘오뉘를 끼고 악으로만 살아오느라고 손톱발톱이 길 새가 없었던 석이 엄마였다’, ‘가을나절 해가 짧다’, ‘석이 엄마는 늦맺이 풋고추를 이파리째 훑어 졸이고, 호박새끼를 따서 국을 끓이고 해서 연이를 덮쳤다’, ‘석이 말소리가 변해지고 수염이 눈에 뜨이게 되자 분이는 엉치가 바라지고 머리때가 짜리고 앞가슴을 여미는 버릇이 들었다’, ‘논두렁에는 한창 약이 오른 메뚜기가 숱하게 뛰었다’, ‘다람쥐처럼 날쌔게도’, ‘써레질을 하려니 아직 질어서 덩이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아 한 이틀 쪼이기를 하고 갈 채비를 했다’, ‘소등열매로 짠 기름등잔을 가운데하고’, ‘동짓달 접어들면 낡은 지붕들이 꾀꼬리처럼 노랗게 단장을 한다.’….

난계 선생이 현재에도 울산에 계신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에 대한 후회가 깊다. 난계 선생을 뵙듯 전집과 만남의 인연이 늦은 것에 대한 회한도 크다. 난계 선생이 자연친화적 문장을 일상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것은 울산의 자연생태와 그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있었고, 근본 심성이 생태주의를 좋아하면서 꾸준히 그 방향으로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난계 선생은 인문학에 자연생태과학을 충분히 접목시킨 것으로 느껴진다. 필자 역시 자연생태과학에 불교, 성경, 국악, 무용, 민속 등 인문학을 접목시켜 강의하고 있다. 난계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자연친화적 관찰에 깜짝 놀란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난계 선생의 문학세계를 만난 것이 무척 다행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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