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파크’를 ‘물놀이공원’으로
‘워터파크’를 ‘물놀이공원’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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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더러 있다. 우리말을 둘러싼 신선한 느낌의 발표를 접할 때가 특히 그렇다. 놀라움은 이내 후련함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해양경찰청은 이달 초, 일상 업무에서 사용하는 일본식 업무용어 100가지를 추려내 국립국어원에 검토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민법의 ‘총칙’ 부분을 한글로 바꾸고 일본식 표현 또는 어려운 한자어를 삭제하거나 알맞은 용어로 바꾸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모두 우리말을 다듬어 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3·1 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의 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짧게 간추리자면, 해경은 ‘모구리(もぐり)’를 ‘잠수부’로, ‘기리카시’는 ‘교체’로, ‘나라시’는 ‘물청소’로, ‘단카(擔架,たんか)’는 ‘들것’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또 법무부는 일본식 한자어 ‘其他(기타)’를 ‘그 밖의’로, ‘窮迫(궁박)’은 ‘곤궁하고 절박한 사정’으로 바꾸고, 어려운 한자어 ‘念慮(염려)’는 ‘우려’로, ‘催告(최고)’는 ‘촉구’로, ‘해태(懈怠)한’은 ‘게을리 한’으로 바꾸기로 했다. 61년 만의 개정작업이니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어 체증이 싹 가신다.

지난달에는, 극히 드문 일이지도, 울산시 보도자료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정확한 날짜와 순화어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벤치마킹(benchmarking)’이란 용어를 순우리말과 함께 나란히 표기한 일이다. 그렇다면 ‘벤치마킹’을 어떻게 바꾸어 쓰면 좋을까? 이 질문은 2012년 1월 국립국어원이 ‘스펙’(spec)이란 용어와 한 묶음으로 ‘순화어 공모’ 대상에 올린 바 있었다. 최근에 뒤져보니 두 가지 뜻풀이가 나와 있다. ‘우리글 사랑 운동’을 펼치던 충청북도가 2009년 11월 ‘순화대상 외래 행정용어’ 48개를 골라내면서 벤치마킹을 ‘따라잡기’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 이것도 국립국어원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돼 있지만 국립국어원은 나중에 ‘본따기’ 또는 ‘본따르기’로 바꾸어 쓰기를 권한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이 내놓았다고 해서 늘 빼어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바닥 정서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흔적은 2013년 3월에 공개한 순화어(→다듬은 말)에서도 적잖이 발견된다. ‘세꼬시’(せごし=생선을 뼈까지 잘게 썰어 만든 회)를 ‘뼈째회’로, 스마트폰을 ‘똑똑전화’로, 퀵서비스를 ‘늘찬배달’로, 싱글 맘을 ‘홀보듬엄마’로, 러브 샷을 ‘사랑건배’로, 노트북을 ‘책크기 전산기’로, 데스크톱을 ‘탁상 전산기’로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억지 순화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바닥 정서를 제대로 헤아렸다면 이들 순화어는 벌써 ‘굳어진 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지 않을까. 그래도 홈페이지를 ‘누리집’,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바꾼 것은 참 잘한 일, 멋들어진 일이다. 울산시 홈페이지의 딴이름 ‘울산누리’도 아주 근사하게 지은 순화어의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 선을 못 넘어서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찌 됐건, 우리 말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일본말의 찌꺼기, 유식한 척하는 데 곧잘 이용되는 외래어,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수도 없이 밀어낸 한자어를 걷어내려는 노력은 그 시기가 언제든 값어치가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어인 쿠사리(くさり)를 핀잔으로, 일본식 한자어인 출구(出口)·입구(入口)·출입구(出入口)를 ‘나가는 곳’, ‘들어오는 곳’, ‘나들목’으로 바꿔 쓰고, 각자를 ‘저마다’로, 각개를 ‘따로따로’로, 매너리즘을 ‘타성’으로, 프로세스를 ‘공정’으로, 프로젝트를 ‘일감’이나 ‘연구과제·계획·기획’으로 바꿔 쓰자는 얘기다. 내친김에 머잖아 문을 열 ‘워터파크’(water park)를 ‘물놀이공원’으로 바꿔 쓰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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