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10년에 보내는 헌사-‘어벤져스: 엔드게임’
마블 10년에 보내는 헌사-‘어벤져스: 엔드게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0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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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이언맨> 1편이 개봉했을 때 마블 스튜디오(미국 만화책 출판사인 마블코믹스의 슈퍼히어로들을 영화로 제작하는 회사·이하 마블)가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그해 난 몇 달 후 마블의 경쟁사인 DC가 ‘배트맨’시리즈 2탄으로 내놓은 <다크나이트>에 완전 미쳐 있었고, <아이언맨>은 먼저 개봉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트랜스포머> 1편의 아류작 정도로 여겼다. 아이언맨도 결국은 실사화된 로봇이었으니까. 물론 영화는 꽤 재밌었다. 하지만 그해 최고의 영화는 누가 뭐라 해도 <다크나이트>였다.

다만 <아이언맨> 1편 직후 개봉한 마블의 <인크레더블 헐크>에선 조금 눈치를 챘었다. 그 영화의 쿠키 영상(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 전후로 짧게 추가되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등장한 것. 우리나라 만화책 보기도 바쁜데다 영어로 된 미국 코믹스와는 담을 쌓고 있었던 탓에 그런 동반 출연이 이미 만화책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도 아예 몰랐었다.

또 그게 바로 슈퍼히어로들이 떼로 등장해 서로 힘을 합치는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시작이라는 것도 얼마 뒤에야 겨우 알게 됐던 것. 아무튼 어릴 적 즐겨 봤던 만화영화 <마징가Z>의 마지막회에서 ‘마징가Z’와 ‘그레이트 마징가’가 함께 등장하는 순간 느꼈던 전율을 기억해내며 철지난 동심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사실 영화에 대한 내 깊은 애정의 시작은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비디오가 아주 귀했던 80년대 초반의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부잣집 친구 집에서 비디오로 봤던 <스타워즈>에 눈이 뒤집혔고, 만화영화에서 어설프게 봐왔던 우주공간과 우주선이 실사로 구현된 모습에 ‘영화=마법’이라는 공식을 깨닫게 됐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무비들도 일종의 마법인 셈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마블의 매직(마법)은 계속됐다. 2011년 천둥의 신 토르와 캡틴아메리카가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듬해인 2012년엔 드디어 <어벤져스> 1편과 조우하게 됐다.

외계종족의 침략에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아메리카, 블랙위도우, 호크 아이가 힘을 합쳐 싸우기 위해 한 화면에 다 잡힐 때의 전율이란, 신나서 죽겠더라.

이후 2014년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개봉하면서 MCU(Mavel Cinematic Universe:어벤져스팀이 함께 공유하는 세계)는 더욱 확장됐다.

그러더니 이듬해인 2015년 인해전술의 인공지능 로봇들로부터 지구를 구하게 되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하면서 슈퍼히어로들은 더욱 많아졌고, 2016년 <캡틴아메리카:시빌워>를 통해선 개인적으로 마블 슈퍼히어로 가운데 가장 좋아했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까지 합류했다.

사실 <캡틴아메리카:시빌워>는 그 동안 주로 재미만을 추구해온 마블이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영웅적인 행동에도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주적인 철학을 들먹인 가히 혁명적인 작품이었다.

마치 DC의 <다크나이트>같았던 것. 그 분위기 그대로 지난해 4월 개봉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서는 복지 우주 건설을 위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평하게 죽여 버리려는 악당 타노스(조슈 브롤린)의 모습에 할 말이 없더라. 악당이지만 미워할 수가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결말에서 슈퍼히어로들의 떼죽음은 슬프지만 아름다웠다.

장조가 아닌 단조가 주는 구슬픈 매력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마침내 <어벤져스:엔드 게임>이 얼마 전 개봉했다. 사실 조금 실망했더랬다.

전작의 비장미가 사라지고 결말을 정해놓고 다소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었던 것. 하지만 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들의 영웅들이었으니까. 마블의 10년 큰 그림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마블의 10년은 내게도 같은 10년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동안 내겐 많은 아픔들이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고, 걱정도, 상처도 많았다. 또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나 역시 지랄 맞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블의 새 슈퍼히어로 영화 개봉일이 다가올 즈음이면 한 달 전부터 들떴었다. 요즘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안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거 같다.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평생 진짜 행복을 맛볼 수 없다는 것. 행복을 위해 다들 사랑에 기대지만 어깨를 내준 그 사람도 사람인지라 자꾸 움직일 수밖에 없어 편하지가 않다. 기대는 사람도 마찬가지겠만. 또 끝이 난 사랑은 최악의 고통으로 돌변하기 마련. 어쩌면 움직이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지 않을까. 상처도 함께 주니까. 해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혼자여서 외로울 때 마음 놓고 기댈 ‘취미’ 하나 없는 사람이 아닐까.

영화는 내가 손만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그곳에 늘 있었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한결같이. 그 중에서도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마치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 같은 존재였다. 땡큐 마블!

2019년 4월 24일 개봉. 러닝타임 18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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