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으로 다가온 초록엽서
우리 옆으로 다가온 초록엽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0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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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느티나무 가로수 길에는 검은 줄기와 햇빛이 투과되어 얇고 하늘거리는 초록 잎의 조화로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봄’의 1악장 연주회가 열리고 있다. 자연과 생명에 대하여 미당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온 세상의 기운이라 했고, 시인 강석주는 대추 한 알에 천둥과 번개 등 온갖 고난과 역경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세상 모든 고등생물의 출발점은 국화도 대추열매도 아닌 작고 여린 새 순, 신록(新綠)이다.

필자는 일전에 대구 앞산에서 달성군 비슬산까지 종주산행을 한 적이 있다. 능선에는 진달래, 복사꽃, 황금붓꽃, 개별꽃이 만발하고 산 아래에서 시작된 초록빛은 물비늘을 일으키며 들불처럼 산꼭대기를 향하여 타오르고 있었다. 중턱은 유백색의 산벚꽃이 어우러져 묽은 물감을 붓으로 툭툭 찍어 그린 한 폭의 밝고 시원스러운 수채화 같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길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면서 ‘와 좋다’ ‘멋지다’ ‘행복하다’란 말이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왔음은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 숲길을 걸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마음과 몸이 맑고 편안해지면서 금세 열릴 것만도 같아진다.

신록에 대하여 시인 박재삼은 <벙어리가 소리 지를 뻔한/ 연한 잎이 핀/ 눈부신 만 천 가지 비밀을/ 대명천지 속에 내놓아/ 밑도 끝도 없는/ 기쁨을 연출하고 있는/ 이 커다란 손을/ 이 기막힌 호사를>이라고 표현했다. 신록을 보면 우리는 흔히 눈이 시원해진다고 한다. 이유를 밝히는 연구 가운데 하나가 한국해양대학교 최철영 교수 팀의 연구로, 최 교수 팀은 녹색 파장의 빛을 이용해 어류의 손상된 망막세포를 회복·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LED 파장의 빛을 해양생물에 적용하여 연구한 결과, 녹색이 눈의 피로를 감소시켜 준다는 기존의 속설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냈다.

흔히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 파장의 빛은 인간의 망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녹색 파장의 빛은 사람에게 컬러 테라피(Color therapy, 색채 치료)에 활용될 정도로 생물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최 교수는 “녹색 빛이 어류 망막세포의 회복에 기여함은 물론, 빛 공해로 인해 만성적 눈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시력 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즘 나뭇잎 색깔, 참 기가 막히게 예쁘지요? 근데 왜 연한 초록색일까요? 그냥 새 잎이어서 그런가요? 여름이 될수록 색이 짙어지는 것 같은데. 왜 그렇지요?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은 엽록소라는 녹색을 띠는 물질로 생명의 기본현상인 광합성을 한다. 잎의 엽록체 안에 있는 엽록소는 햇빛이 강한 여름에는 광합성을 많이 하면서 증가하여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짙은 녹색으로 보인다. 처음 새 순이 나올 때는 붉은색 계통과 다양한 연초록색으로 시작해서 햇빛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초록으로 변하여 신록의 하모니를 이룬다. 이 연약한 나뭇잎 하나가 광합성을 시작하여 만든 산소와 영양분이 만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의 출발인 것이다.

이양하 선생은 수필 ‘신록예찬’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 중에서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때일 것이다’라고 했다. 언제 벚꽃이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반짝이는 여린 잎들이 손을 내밀고 있다. 이를 두고 선생은 ‘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연한 이파리 하나가 세상을 향하여 나오면서 세상의 문이 열렸다. 천지에 생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일도 계절의 수레바퀴에서 나오는 신록의 경이로움과 같이 찬란하게 이어지기를 빌어본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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