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일제잔재 걷어내는 해경과 정치권
일상 속 일제잔재 걷어내는 해경과 정치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5.01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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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임시정부 출범 100돌을 맞아 우리의 일상 속에 버젓이 남아있는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걷어내려는 움직임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같은 움직임에 앞장서는 조직의 하나는 대한민국의 바다를 철통같이 지키는 해경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일제 때의 용어 ‘근로’ 대신 ‘노동’으로 바꿔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해양경찰청은, 지난 3월부터 일상 업무에서 사용하는 일본식 용어 100개를 가려낸 다음 국립국어원에 검토를 요청했다고 1일 밝히고 일본식 용어와 순화어를 같이 소개했다. 엔진을 바꿀 때 쓰는 ‘기리까시’는 ‘교체’로, 입항 전 함정 내부를 청소할 때 쓰는 ‘나라시’는 ‘물청소’로, 물에 빠진 사람을 실어 나를 때 쓰는 ‘단카’는 ‘들것’으로, 바다에서 어획물을 건져 올리는 ‘모구리(もぐり)’는 ‘잠수부’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해경은 이 같은 일본식 용어 20개뿐 아니라 ‘고참(→선임자)’과 같은 일본식 한자어 59개도 순화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또 ‘관할(→담당)’과 같은 어려운 한자어, 그리고 해경 소관 법령 6가지와 행정규칙 112가지에서 보이는 ‘기타(→그밖에)’를 비롯한 일본식 법령용어도 차츰 다듬어 나가기로 했다. 이 같은 용단은 조직의 장이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좀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다. 때마침 조현배 해경청장이 “친일잔재 청산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라며 “해양주권을 수호하는 해경이 앞장서서 우리말을 사용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해도 일본식 표현이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지각없는 일부’의 책임도 크지만 국회를 비롯한 우리 정치권 일각에서 일제잔재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종된 현상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나마 정치권의 또 다른 일각에서 일본식 용어 추방 운동에 나선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근로’를 ‘노동’으로 고쳐 부르자는 전국적인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노동당 울산시당은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울산시 조례에 담긴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라고 촉구했다. 사실 서울시의회는 지난 3월 8일 본회의에서 53개 조례에 담긴 ‘근로’란 용어(보기: ‘기간제근로자’, ‘근로청소년’)를 ‘노동’으로 바꾸는 ‘서울시 조례 일괄정비를 위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서’는 ‘노동계약서’로, ‘공공근로요원’은 ‘공공노동요원’으로, ‘근로복지관’은 ‘노동복지관’으로 바꾸어 부르게 됐다. 이 조례안의 대표발의자인 서울시의회 권수정 의원(정의당)은 지난 2월 25일 “근로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 ‘근로보국대’ 등 식민지배 논리를 뒷받침하는 용어로 자주 사용됐다”고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노동’이라 표현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에 젖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화두는 ‘평화’와 ‘공존’이다. 해경과 정치권 일각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변화의 바람에 그래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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