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지붕뚫고 하이킥’
[이상길의 드라마에세이]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지붕뚫고 하이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2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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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이라. 종영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트콤을 보게 된 건 한 예능 프로에서 이 드라마가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최근에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유튜브 1억뷰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접한 탓이었다.

그랬다. 2009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방영될 당시 난 이 시트콤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당시 방영 시간이 퇴근 시간과 겹쳐 본방사수가 어려웠던 것. 그렇다고 인터넷 등을 통해 다시보기를 할 정도로 끌리지도 않았다.

한 에피소드마다 고작 20분 정도의 시트콤인데 잠시 가볍게 웃고 즐기는 게 전부일 거란 선입견이 컸던 탓이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인터넷상에서 다시 뜨고 있다는 소식에 묘하게 끌린 나는 ‘대체 얼마나 웃기길래 그럴까?’라는 생각으로 1회부터 정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요즘은 예전의 <명량소녀 성공기>나 <옥탑방 고양이>, 혹은 <환상의 커플>처럼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드라마가 잘 없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웃어보자는 심산이었던 것. 그런데 이 시트콤, 좀 이상하더라.

아시다시피 <지붕뚫고 하이킥>은 빚에 쫓겨 깊은 산속으로 도피해 아빠(정석용)와 함께 살던 세경(신세경)과 신애(서신애) 자매가 빚쟁이들의 추격으로 아빠와 생이별을 하고 다시 서울 한복판으로 내려온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땡전 한 푼 없이 노숙자로 거리를 헤매던 세경 자매는 다행히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부잣집인 해리(진지희)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근근이 살게 된다. 해리는 신애와 동갑이었고, 해리에겐 고등학생 오빠로 준혁(윤시윤)이 있었다.

해리 집에는 또 방귀쟁이 할아버지 순재(이순재)를 비롯해 모자란 사위 보석(정보석), 그런 남편이랑 아이들(준혁·해리)에게 걸핏하면 하이킥을 날리는 왕년의 태권도 선수 현경(오현경)과 현경의 친동생이자 레지던트 의사인 수재 지훈(최다니엘)도 함께 살았다.

해리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자옥(김자옥)이 운영하는 하숙집에는 세경 자매를 많이 도와주는 외국인 유학생 줄리엔(줄리엔 강)을 비롯해 광수(이광수)·인나(유인나) 커플과 가난한 취준생 정음(황정음)도 살고 있었다. 참. 아내의 사별로 혼자가 된 순재와 자옥은 황혼의 연인이었다. 하지만 지훈, 정음, 세경, 준혁 간에 펼쳐지는 4각 관계가 주된 러브라인이다.

딱 봐도 웃길 것 같지 않나? 헌데 웬걸. 마냥 웃기 위해 보기 시작한 이 시트콤의 웃음은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무거워지더니 나중에는 슬퍼지더라.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국민 유행어가 되어버린 해리의 ‘빵꾸똥꾸’마저 나중에는 슬퍼진다.

사실 이 시트콤에서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대부분 슬퍼진다. 복잡한 4각 관계는 어느 누구와도 이뤄지지 않았고, 해리와 신애의 시끌벅적한 우정도 이별로 인해 마지막엔 슬퍼진다.

그건 처음부터 찰떡 커플로 등장했던 광수와 인나도 마찬가지. 그리고 마지막회에서는 시트콤 역사에 길이 남을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어버리는데 진짜 할 말이 없더라. 본방 당시에도 그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그로 인해 지금도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랬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시트콤이 아니었다. 시트콤 형식을 빌린 ‘인생 드라마’였던 거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시트콤을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랬더니 92회인가. 거기서 연출자인 김병욱 PD가 직접 자막으로 띄운 한 줄의 글귀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

잔뜩 눈이 내린 날 산소를 찾은 보석과 현경 부부는 눈덩이를 던져가며 서로 죽일 듯이 부부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걸 멀리서 지켜보던 노부부는 사정도 모르고 “좋을 때”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 때 화면 아래쪽에는 자막으로 전설적인 희극인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 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사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그것은 마냥 웃기기만 한 시트콤이 아니다. 오히려 <지붕뚫고 하이킥>처럼 웃픈 드라마에 가깝다. 웃길 때도 있지만 슬플 때도 있다. 아니 웃음은 잠깐이고 대체로 다 슬퍼진다. 결국은 세상과 이별해야 하니까.

평소 해리가 미운 사람에게 거침없이 날렸던 “빵꾸똥꾸”는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끼어대는 할아버지 때문에 생겨난 듯하다.

굳이 풀이하자면 ‘똥꾸(똥꼬)에서 나온 빵꾸 같은 놈아’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똥꾸에서는 빵꾸만 나오는 게 아니다. 똥이 나올 때도 많다. 그런 “똥똥꾸”에 비하면 “빵꾸똥꾸”는 그래도 귀엽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가끔 화장실 안이 아닌데도 똥꾸에서 똥이 나올 때가 있는 법. 그럴 때 흔히들 ‘당황스럽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 때도 그가 습관적으로 아닌 척 웃고 있으면 멀리서 그걸 지켜보는 이들은 그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 수가 없다. 허나 가까이 오면 냄새로 알게 된다. 확실히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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