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⑤
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2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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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번째 날 (下) -

더구나 멀리서 영화 ‘연인’ 속의 주인공 제인 마치가 청순하고도 아리따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녀가 맞은편에 앉았다가 떠난 후, 이번에는 ‘인도차이나’의 주인공 린당 팜이 외로운 나그네의 벗이 되어주는 것 아닌가.

이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다신(茶神)들의 꽃밭을 마음대로 날아다녔다. 장자(莊子)의 호랑나비를 대신해서 이리저리 남국의 신들을 찾아다녔다. 중간 중간 아보카도와 잭 푸룻, 용안, 두리안, 람부탄 등의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쉬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 때 포격으로 패인 둥그런 땅거죽을 두어 군데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라비카 종의 커피나무들은 머리를 조아렸고, 로브스타 종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반겼다.

이곳 볼라벤 고원에는 폭포들이 곳곳에 산재했으니, 탓 로와 탓 이뚜 폭포에 들러 더위를 식히고자 잠시 미역을 감기도 했다. 그때마다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블루라군’의 브룩 실즈와 ‘마농의 샘’에서 앳된 미모를 자랑하던 소피 마르소가 출연하기도 했다.

자, 그렇다면 이 우주별 여행자의 지구 탐방은 가히 행복에 넘쳤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연유에서 나는 탓 이뚜 폭포의 수면에 깊고도 짙은 열정의 입맞춤을 마구 해댔다. 내 또다시 언제 이곳 폭포들이 지닌 늘씬한 몸통을 실컷 품에 안고 느껴볼 수 있으랴.

- 열한 번째 날 -

라오스가 내게 정을 떼는가. 아니면, 라오스는 나와의 이별이 싫은가. 라오스 체류의 마지막 일정이 참으로 묘하게 꼬이면서 돌아갔다.

오전에 짐을 꾸린 다음, 느지막이 왓 푸 사원을 찾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보다 수백 년 앞선 고대유적이라서 부푼 마음을 안고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사원은 쓰레기더미에 덮였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말이 아니었다. 도처에 깔린 소똥은 자연의 부산물이니, 백번을 양보해서 이해해준다고 치자. 문제는 내던진 생수통과 비닐봉지에다 먹다 버린 음식물과 온갖 잡동사니들이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고,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이틀 전 음력으로 정월대보름날. 이곳에서 아주 커다란 연례행사를 치렀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얼마나 성대한 행사를 벌였는지, 이건 해도 너무했다고 하리라. 무질서와 혼란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자랑스러운 성지(聖地)를 어떻게 이리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라오스의 국격(國格)과 백성들의 문화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심한 일 아닌가. 허망한 심정에서 한숨과 탄식만 새어나왔다. 이번 여정의 끝맺음이자, 가장 정 떨어지는 방문지였다.

아무렴 오후 5시 45분발 비엔티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팍세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가 2시간이나 연착이란다. 그런데 그 하릴없는 기다림은 마침내 11시 40분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항공사 사무실로 찾아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비엔티엔에서 출발하는 인천행 00시 15분 제주항공 비행기와의 연결이 도무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라오항공에서는 하루를 더 체류하길 권했지만, 결국 00시 45분발 라오항공의 비행기로 갈아타기로 합의를 했다.

도합 7시간을 넘어가는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치고, 어이가 없었다. 담배를 푸욱푸욱 태우자니, 옆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던 호주 사람 하나가 말을 건넸다. 그는 라오스에 20년을 살면서 주말마다 이곳의 국내선을 이용해 곳곳으로 구경을 다녔는데, 이런 일은 오늘 처음으로 겪는단다. 그러면서 날보고 ‘unlucky’란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이다. 비엔티엔에서 부랴부랴 날아온 대체 여객기가 비로소 창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비엔티엔 공항에 도착한 뒤, 승무원들의 특별안내에 따라 인천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비행기는 나 한 사람을 기다리느라 1시간이나 늦게 라오스를 떠났다. 뜻하지 않게 별일을 다 겪는다 싶었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보안요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다음, 그의 답신을 10분 뒤에 전화로 들었다. 알아보니 기체결함이라던 사고기는 새떼에 부딪혀 도저히 비행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단다. 이는 자연재해에 해당하는 경우인데다가, 라오항공에서 인천행 여객기를 일부러 1시간이나 늦춰가며 태워주었으니, 이는 그들 나름의 적절한 조치라서 이해해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는 애초에 비행기 표를 예매했던 제주항공 사무실로 찾아가서 환불을 받으라고 귀띔을 한다. 결과론이지만, 겨우 6만원 남짓한 요금으로 고국에 돌아온 셈이다. 그것도 위약금과 세금의 형식으로 지불한 것이다.

참말로 뜻밖의 일이 연달아 이어진 하루였으니, 종당에는 또다시 딱 한 자리만 남은 공항버스에 가까스로 올라탔다. 자리에 앉자 심사가 복잡해졌다. 라오스가 내게 정을 떼는 하루인가, 아니면 일정상 생략하고 만 사반나케트와 말끔하게 정리된 왓 푸 사원으로 다시 찾아와야 한다면서 끈질기게 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은 하루인가.

라오스. 그대를 미워해야 하는가, 미워도 다시 한 번 인연을 맺어야 하는가. 이는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끝)

유영봉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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