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환경정책, 민관협치 땐 협력… 시민의견 수렴을 최우선 가치로”
“市 환경정책, 민관협치 땐 협력… 시민의견 수렴을 최우선 가치로”
  • 김정주
  • 승인 2019.04.23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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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로 변신한 이상범 전 울산 북구청장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작년 9월, 재창립 의지로 사무처장 자원

‘시민사회단체’는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고 정부나 기업, 언론 등에 영향력을 미쳐 정치적·사회적 개혁이나 개선을 이끌어내는 비정부조직(NGO)이다. 그리고 그 버팀목은 활동가, 운동가들이다.

‘공해추방운동연합 준비위’ 구성(1987)→‘울산공해추방운동연합’ 창립(1989)→‘울산환경운동연합’ 재창립(1993) 과정을 거친 울산환경운동연합 역시 하나의 시민사회단체다. 준비위 구성 시기부터 시작하면 조직의 역사가 자그마치 만 32년을 헤아린다. 그러나 30년을 넘기면서부터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이름뿐인 조직’이란 오해도 사야 했다. 활동가의 부존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사정이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활동가 역할을 자원하는 인물이 ‘혜성같이’ 나타난 덕분이다. 이상범 전 울산 북구청장(62)이 화제의 주인공. 그는 작년 9월, 한동안 비어있던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자리를 챙기고 ‘재창립(再創立)’의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사무처장직은 지난 2월에 열린 2019년도 정기총회에서 정식 인준을 받는다.)



학력 ‘중2 중퇴’, 현대차노조 창립 앞장

그의 필명은 ‘질고지’다. 이 필명은 그의 이메일주소에서도 영어글자 ‘jilgojy’로 되살아난다. 이 낱말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고향마을(충북 보은군 수한면 질신리)과 유관하다.

“‘질고지’는 ‘질신리’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렇게 부르시고 하던 부모님 두 분이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차례로 돌아가셨지요. 의지할 데도 없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상범 사무처장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다. 그래도 그는 이를 악물었다. 역경의 담금질이 순진하던 그를 단단한 무쇠로 만들어 주었다. 도청소재지 충주로 건너가 막일을 하다가 자동차정비기술을 익혔고, 자격증까지 땄다. 그런데 이 자격증이 그의 인생을 백팔십도로 바꾸는 데 기여한다.

그의 울산생활은 1979년 9월부터가 시작이다. 전국 팔도 청년들의 꿈이었던 현대자동차 입사(대형조립부)가 끝내 성사된 것이 계기였다. 그 숨은 얘기는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어쨌든, 근면성실하면서도 엉뚱한 면이 많았던 ‘기능공 이상범’의 성격은 그 자신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준다. 1987년, 노동운동의 파도가 울산 전역을 뒤덮고 있을 때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결성’이란 사고(?)를 앞장서서 치고 만 것. (그는 제2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15일 울산시청 앞에서 울산시가 추진 중인 태화강 백리대숲 조성 사업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맨 오른쪽). 울산제일일보 자료사진
지난 15일 울산시청 앞에서 울산시가 추진 중인 태화강 백리대숲 조성 사업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맨 오른쪽). 울산제일일보 자료사진

 


전공노파업 감싸 직무유기… 대법 ‘무죄’

덩달아 올라간 그의 명성은 그를 정치권으로 밀어냈고, 한동안 그는 승승장구(乘勝長驅)란 말뜻에 스스로 도취하기에 이른다. 광역시 승격(1997) 이듬해에 찾아온 민선2기 시의원 당선(1998, 무소속), 4년 후에 이어진 북구청장 당선(2002, 민주노동당)의 기쁨은 그의 키 높이보다 더 웃자란 자만심에 불을 지피는 기름으로 변하고 만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할까, 그 뒤끝은 그리 달갑지 못했다. 구청장 말년에 보여준 소신행정은 ‘직무유기’의 올가미가 되어 ‘직무정지 7개월’의 쓴맛까지 보여주게 된다. “2004년, 전국적인 공무원노조 파업 때 동참한 북구청 노조원들을 파면하거나 해임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긴 것이 죄라면 죄였습니다.”

사실 그는 ‘권위의식’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직업의 귀천도 따지는 일이 없다. 그가 잠시 현직에서 물러나 있던 무렵 필자는 북구 연암동 어느 찻길에서 대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던 ’구청장 이상범‘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던 그는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주민들께 봉사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2007년,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이 판결이 그의 정치적 꿈을 접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자석(磁石)에라도 이끌린 듯 북구청장 선거(2010), 19대 국회의원 선거(2012), 울산광역시장 선거(2014)에 연거푸 출마하면서 ‘정치꾼’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번번이 ‘진보 단일화’ 그물에 걸려 주저앉고 만다. 특히 그의 ‘정치적 스승’ 손학규 선생(현 바른미래당 대표)을 따라 ‘민주당 후보’ 간판을 달고 나섰던 시장선거는 그에게 치명상만 안겨주고 만다. 중앙당 방침과는 달리 ‘진보후보 단일화’에 응했다가 낙마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이 때문에 선거비용마저 한 푼도 건지지 못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알거지’란 오명뿐이었다. 그러나 북구 양정동 어느 지인의 ‘손바닥만한 3층 옥탑방’을 숙소로 정한 그의 ‘밑바닥 인생’은 이때부터 재기(再起)의 용틀임을 하기 시작한다.



급선무는 회원 배가→자립기반 다지기

그렇다고 용광로 같았던 그의 열정이 어느 날 갑자기 휴화산처럼 식어버린 것은 아니다.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상범’에서 출구를 되찾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대부분 지역의 ‘주요 뉴스’로 기록되고 있다. 어찌 보면 ‘사무처장 이상범’의 시너지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시청 정문 앞에서 ‘미세먼지 저감을 겨냥한 울산형 특단의 조치’를 요구한 것도, 그보다 일주일 전 같은 장소에서 ‘백리대숲 조성에 따른 충분한 의견수렴’을 요구한 것도 다 그가 기획하고 실천에 옮긴 지역 현안들이다. ‘활동가, 운동가의 위상을 확실히, 유감없이 드러내 보인 이벤트’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아직은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방송 출연 요청도 이따금 들어오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일들이 밤잠을 설치게도 한다. 시급한 일 가운데 하나는 ‘회원 배가 운동’이다. “우리 조직은 순수 민간운동 단체입니다. 지자체의 공식 지원은 없고 회원 회비로만 운영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처장이 밝히는 울산환경운동연합 회원은 600명 남짓. 월 회비라 해야 회원 1인당 5천원~1만원 수준이고, 간부직들은 3만원을 낸다. 회원이 늘어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현재 2명뿐인 상근직원부터 2배로 늘릴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재정 불리는 일이 화급하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이 처장은 일인다역(一人多役)이 습관처럼 굳었다. 보고서·계획안 작성도 자체교육도 사무처장의 몫이다. 구청장직을 그만두고 현대자동차 교육부서에서 손수 익힌 PPT 교안 작성기술도 외부강의 나갈 때는 제법 요긴하게 쓰인다.



“협치없이 일방통행이면 끝까지 싸울 것”

그래도 대화 속에 불평을 찾기가 힘든 것은 천성이 낙천적이고 이타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성격은 가정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잔나비 띠’ 동갑내기인 부인 최규자 여사가 낙제점을 주는 것도 그런 성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내한테서 이런 핀잔을 듣곤 한답니다. ‘남한테만 다 퍼줄 게 아니라 집식구한테도 잘해 보라’고…. 허허.”

그래도 1남1녀를 선사해준 부인과 가정에 대한 미련을 한 번도 접은 적은 없다. 시장선거 출마 후유증이 시작되던 2014년부터 경기도 안산의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긴 부인을 만나러 격주에 한 번은 꼭 안산을 찾는다.

어찌됐건 한때 지자체의 장까지 역임한 그는 현재 환경운동에 열성적으로 앞장서는 활동가다. 이러한 그의 변신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민들의 요구를 대변함으로써 정치적·사회적 개혁이나 개선을 이끌어내는’ 이타적 활동가의 영역을 한 번도 벗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집착하는 일도 없다. 울산시 미래비전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는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한번은 이상범 사무처장이 ‘백리대숲’을 주제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실질적인 민관협치(民官協治)를 한다면 얼마든지 협조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애정 어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방통행으로 간다면 환경운동단체의 정체성에 맞게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싸울 것은 싸울 겁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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