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만들어준 인생길
책이 만들어준 인생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2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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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톨스토이 인생론’ 좀 사다 주세요.”

먼 길 떠나시는 엄마에게 대뜸 딸아이가 부탁을 한다. 엄마는 의아하다는 듯이 아이를 쳐다본다.

“진짜 꼭 읽고 싶어요.”

엄마는 확답을 피한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타 지역에 중요한 볼 일을 보러 가는 길이니 시간이 날지 어떨지도 모르고 또 돈이 여유가 될지도 미지수였다. 게다가 초등학생이 웬 ‘인생론’? 그러나 결국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그 책을 딸에게 사다주었다. 37년 전 당시 돈으로 4천원이나 하는 거금이었다.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던 엄마 덕분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다. 분야도 다양했다. 위인전, 세계명작동화, 전래동화, 과학만화, 미술대사전, 학습대백과 등 모두 전집이었다. 그렇게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살았으니 자연스레 나는 책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커감에 따라 읽고 싶은 책들도 자꾸 생겨났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톨스토이의 인생론이었던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인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냐만 또래와는 다르게 일찍 철이 든 나는 그 책이 무척 궁금했고 꼭 사서 읽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 책을 받아들고 뛸 듯이 기뻤고, 한 구절 한 구절 정성스레 읽었다. 책 읽는 시간은 신이 났다. 책 속에는 온갖 이야기가 담겨있었고 흥미진진했다. 삶의 힌트도 얻을 수 있었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요즘, 사람들이 어찌나 바쁜지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책은 한가할 때나 읽는, 일종의 여유로운 사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자기개발이다 뭐다해서 꼭꼭 시간 내서 책을 읽고 마치 투쟁하듯이 책과 씨름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책을 읽는다고 해도 양과 질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어쨌거나 책을 읽는 것은 책 속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생각과 느낌을 전해 받고 자신의 삶에 유익함을 얻는 귀한 일이니 더 많은 이들이 책과 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이 많은 환경 속에서 자란 나는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1980년대 무렵, 내가 중학생일 때는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나는 그 책을 당장 사서 읽었다.

어느 날이었다.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가 내게

“경영아! 너,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라는 책, 읽어봤어?” 하고 묻는 것이었다.

“아니! 나, 안 읽었어.” 하고 나는 거짓 대답을 했다.

만약 내가 읽었다고 하면 그 친구도 얼른 그 책을 사서 읽을 것만 같았다. 그 친구와 나는 보이지 않는 경쟁관계였는데 성적뿐 아니라, 책을 읽는데 있어서도 나는 그 친구한테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졸업식 날, 친구는 내게 편지와 함께 선물 하나를 내밀었다. 얼른 포장을 벗겨보았다. 세상에! 그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라는 책이었다. 나는 몹시 놀라고 부끄러웠다. 친구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그 책을 선물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럴 수가! 얼마나 내가 작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로 웃음이 나지만 그 당시엔, 나의 속 좁은 생각이 무척 창피했다. 어쨌거나 나는 친구의 우정 어린 마음덕분에 책과 관련한 감동적인 추억도 갖게 됐다.

나는 책을 매개로 이야기꽃이 피고 책을 통해 삶의 지혜도 얻고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지는, ‘책으로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어릴 때부터 책과 더불어 살아오다보니 책이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내가 읽었던 유익한 책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매달 책을 소개하는 북토크쇼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책이 만들어준 행복한 내 삶의 길이다. 행사에 참여했던 분들이 ‘책을 읽고 싶어요.’, ‘감동적인 시간이었어요.’, ‘또 참석하고 싶어요.’, ‘소개해주신 책을 다 샀어요.’ 등등의 말씀을 전해주실 때 나는 정말 행복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감동적인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각종 영상매체와 인터넷 세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요즘 세대들에게도 이 담백하고도 깊은 맛이 나는 책 읽기의 참맛을 알려주고 싶다. 책이야기로 교육도 가능하고 놀이도 가능하고 여가시간 활용도 가능하니 이처럼 다용도의 유익한 도구가 또 어디 있으랴!

책으로 소통하고 책 속 지혜로 삶을 다듬고 책 이야기로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우는 사회! 곳곳에 책의 향기가 물씬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사회를 기대해본다.

이즈음, 37여년 전 엄마가 사다주신 ‘톨스토이 인생론’을 다시금 펼쳐보고 싶다.

구경영 북토크쇼 ‘꽃자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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