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④
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④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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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번째 날 -

라오스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그래서 바다와 인연이 없는 나라다. 게다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모양으로 비추어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충청북도와 비슷한 형세다. 그러나 크기는 우리나라의 1.1배에, 인구는 겨우 800만 정도의 전형적인 산악국가다.

북부지역에서 노닐던 걸음을 남단으로 옮겼다. 루앙프라방 공항에서 팍세행 비행기를 탔다. 구식 쌍발기로, 정원 72명의 소형 비행기다. 오랜만의 해후를 기념이라도 하는가. 좌석에 앉자마자 모기 한 마리가 침 세례를 하고 도망친다. 쌍발기는 시끄럽지만, 역시 이착륙이 손쉽고 안전하다는 강점을 지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라오스의 모습은 온통 산이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솟구친 산들을 비집고, 건기의 사행천(蛇行川)이 어렵게 몸부림을 친다. 길들도 덩달아 구불거리며 조그만 마을을 만났다가 헤어진다.

12시 40분. 팍세에 도착해 여장을 푼 다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다.

이곳은 하늘이 아주 넓은 곳이다. 석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시간에 맞춰 서쪽의 세돈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나갔다. 구름이 많았지만, 빛의 산란과 반사는 구스타프 쿠르베가 몇몇 그림에서 보여준 하늘을 연상시켰다. 넓고 큰 화폭에 담은 극사실화였다.

쿠르베는 “천사를 보여준다면 나는 천사도 그려낼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긴 화가다. 문득 쿠르베를 소환해서 이곳의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두 번이나 더 이곳의 석양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분명 나는 앞으로 이틀 동안 저녁마다 이 강변에 나앉으리라.

- 아홉 번째 날 -

라오스의 최남단 시판돈은 4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삼각주 지역이다. 시판돈이란 말 자체가 ‘4천 섬’이란 뜻이다. 이곳은 도도하게 흘러온 메콩강이 크게 품을 벌린 곳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섬이 돈콘이다. 아주 작은 섬들은 마치 벼 포기 같은데, 이들의 숫자가 가장 많다.

팍세를 벗어난 미니밴이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달린다. 이따금 작은 산과 언덕이 나타나는 비산비야(非山非野)지만, 점점 평원이 펼쳐진다. 숲과 논, 웅덩이가 공존하는, 우리 눈에는 다소 생소한 들판이다. 불을 놓은 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니, 이곳은 아직도 개간중이다. 농가주택과 농막이 뚝뚝 떨어져 나타난다. 2시간가량을 달린 차량이 선착장 앞에 섰다. 크고도 너른 메콩강 앞이다.

돈콘 섬으로 향하는 보트가 메콩강을 질주한다. 아니, 강보다 더 큰 하늘을 향한 질주다. 작열하는 열대의 태양 아래 메콩강이 천천히 젖가슴을 연다. 처음 겪는 비경인지라, 부르르 몸서리가 처지고 물살이 튄다. 순간 내 앞에 오드리 햅번이 내려앉았으니, 나는 저절로 그레고리 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메콩강의 물살을 따라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제목은 ‘메콩강의 휴일’로 아예 정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국의 속살이 절로 드러나는 시판돈을 햅번과 함께 했으니, 나는 대부호가 된 느낌이었다. 길게 뻗은 탓 솜피밋 폭포는 더 없이 아름다웠다.

돈콘과 돈뎃 섬을 잇는 멋들어진 다리를 바라보며 노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프랑스인들이 세운 다리라고 하는데, 실제로 가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미라보 다리가 이렇게 생겼으리라. 순간 나는 외로운 기욤 아폴리네르가 되어 마리 로랑생을 초청했다. 파스텔 톤의 화사함을 지닌 그녀가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녀와 나는 사랑의 시를 연거푸 지어 메콩의 강물 위에 띄워 보냈다. 이때다 싶어 펼치는 새들의 군무가 하늘에서 세 차례나 이어졌다.

다시 배를 타자, 어느새 햅번이 하얀 드레스에 레이스 양산을 들고 내 앞에 내려앉았다. 수려한 풍광마저 깃든 그 그윽한 눈을 마주하기 어렵기에, 나는 이물 쪽만을 주시하며 길게 담배연기를 날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녀와 내가 콘 파펭 폭포 앞에서 길고도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는 일이었다. ‘메콩강의 주옥’으로 불리는 콘 파펭 폭포의 환호성이 내 귀를 우렁우렁 가득 채웠다.

- 열 번째 날 (上) -

팍세는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다른 도시보다 덜 더운 느낌이다. 도심을 벗어나자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하다. 라오스에서 처음 만나는 교외의 4차선 도로다. 포장 상태도 단연 으뜸이다.

녹차 농장과 탓 판 폭포에 들렀던 미니 밴이 커피 농장으로 진입한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커피나무의 하얀 꽃이 만발했다. 어젯밤 일시에 개화하였다는데, 약간은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내음이 천지에 진동한다. 푸른 잎에 마치 잔설이라도 내린 양 가지 마다 새하얀 꽃이 다닥다닥하다. 마치 이팝나무처럼.

커피나무 숲속에 멋들어지게 꾸며진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에스프레소 더블을 주문했다. 모처럼 대하는 에스프레소다. 커피 머신이 있어야만 맛을 볼 수 있으니, 라오스에서 처음 접하는 순간이었다. 몽환의 꽃향기에 홀리고, 짙은 커피 내음에 취하는 순간이었다. (⑤편으로 이어짐)



<유영봉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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