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위기 좀 봐, 좀 좋아”
“이 분위기 좀 봐, 좀 좋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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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지길 몇 날을 기다렸다. 밤 늦도록 비긋는 소리, 아침이 되면 그곳에 가야지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맘때면 검고 거친 가지를 비집고 춤추는 들녘의 연둣빛 몸짓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햇빛에 농익어 짙고 두터워진 초록 말고, 여리디여린 다정한 새순. 한껏 물을 들이켜고, 접어 구겼던 몸을 펼친 앞산의 빛깔이 어제와 또 다른 세상이다. 서라벌 들판으로 향했다.

일이 있어 며칠 전 우연히 지나다가 하얀 면사포를 쓰고 반기던 벚꽃 가로수 길에서 꼼짝없이 갇혔었다. 차가 많을까 사람이 많았을까, 그 와중에도 과연 명불허전의 경주 벚꽃, 열흘을 채 못 버티고 마지막 꽃잎까지 떨쳐내고서 잔치는 끝이 났다. 너무도 짧은 화양연화(花樣年華), 다시 찾은 며칠 사이 가지 끝 붉은 새잎으로 갈아입은 벚나무의 도열이 낯설고도 애잔하다.

북적이는 큰길을 조금 벗어나 농로를 들어섰다. 금세 한갓지고 너른 들판이 시야를 채운다. 갑옷을 입은 수문장들 사이로 온화하게 앉아 반기는 왕의 무덤, 봉분이 햇살을 받아 화사한 오후 두시의 풍경이 여유롭다. 멀리서 바라보는 정취에 마음이 먼저 고요해지는 진평왕릉에 도착했다.

신라의 왕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나지막한 산 주위에 자리하며 소나무로 대부분 둘러싸여 있다. 제26대 진평왕은 54년이라는 긴 통치기간이 있었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왕이다. 광활한 보문 들판에 황량하기 그지없이 홀로 둥그렇게 놓인 왕릉, 그의 지위나 명성에 비해 다소 소박하다고 느껴진다.

무덤의 외부 모습은 흙으로 덮은 둥근 봉토분이고 둘레로 몇 개의 자연 석렬(石列)만 남아 있다. 보통 현존하는 왕들의 무덤 주위로 십이지 상을 장식하였던지 거대한 석조물로 주위를 에워싼 모습들과 비교가 된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소박한 왕릉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진평왕릉은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소불 정양모 선생과 유홍준 교수와의 일화에서 조금씩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소불 선생이 유 교수에게 신라의 품격 세 가지를 일러주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이 진평왕릉이었다. 유 교수는 그 말을 들은 후 계절마다, 시간마다 여러 차례 들렀지만 도무지 그 천년의 품격이라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힌트를 얻지 않을까, 어느 날 소불 선생을 직접 동행해서 겨우 듣게 된 것은 “이 분위기 좀 봐, 좀 좋아!” 한마디였다. 눈에 보이는 유형의 역사적 가치만을 좇던 사람들에게 그 ‘분위기’란 말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 단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분위기’라는 말에 매혹되어 이후 나도 자주 들르는 곳이 되었다. 혹여 누군가와 동행하게 되면 ‘느낌 어때’라고 꼭 묻곤 하는데 대답들이 저마다 참 다양하다. 이른 아침 이슬 머금은 청량한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의 늦가을을 최고로 치는 사람, 왕 버드나무 초록 잎 흩날리는 팔월을 그리워하는 이, 제각각의 취향에서 그 사람의 결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사월의 진평왕릉을 좋아한다. 하얀 강아지꼬리 살랑거리는 조팝나무 꽃이 도열한 입구, 바람이 불면 향기는 덤이다. 꽃 담장 너머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아직 잎을 틔우지 못한 검은 가지를 비틀며 하늘에 붓칠을 해댄다. 촘촘하게 땅 위에 수를 놓은 노란 민들레, 너무 곧게 뻗어 서늘한 미루나무는 저만치서 멀뚱거리고, 봉분을 향해 선 키 작은 소나무는 운치를 더한다. 조금 이르게 다녀간 한 삶과 새로 움트는 생, 높은 것과 낮은 것, 빠르고 느린 것의 어우러짐이 조화로운 사월의 뜨락은 단정한 품격이 있다.

이번에 동행한 지인은 진평왕릉이 처음이었는데 느낌이 어떠냐는 어김없는 질문을 해보았다. 보름달이 뜨는 오월의 해거름에 노을 앞에 돗자리를 펼치고 소풍 오면 딱 좋겠다는 그. 벌써 몇몇 좋은 이들의 얼굴이 맘에 달뜬 듯 환하게 떠오르고, 누군가 나지막이 읊조리는 소리 다정하다. “이 분위기 좀 봐, 좀 좋아!”

< 최영실 여행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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