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확장실업률’
청년들의 ‘확장실업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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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 지도자들은 ‘일자리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놓는다. 실업은 곧 사회 불안 요인이요, 정권을 위협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고, 트럼프도 그러하고, 시진핑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달린다. 특히 배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 정권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다. 불만을 갖는다. 사회 긴장도가 높아진다. 어느 나라라도 다 그렇다.

1929년 10월 미국 대공황은 금융시장부터 초토화했다. 상장주식 평균 가격은 10%로 쪼그라들었고, 부실채권 폭탄을 맞은 시중은행 수천 개가 문을 닫았다. 그 해 3%였던 실업률은 3년 만에 25%로 치솟았다. 대공황은 미 대통령까지 허버트 후버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바꿔치웠고 미국은 10년에 걸친 뉴딜 정책을 펼쳐서야 대공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 한국 청년이 겪고 있는 취업고통은 90년 전 대공황을 생각해 보게 한다. 지난 13일 발표된 3월 고용동향이 엄중한 현실을 웅변한다. 지난달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0.8%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0.8%p 하락했다. 얼핏 보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용시장의 민낯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청년의 실업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알바 한 시간이라도 더 하고 싶은 ‘잠재경제활동인구’까지 포함한 ‘청년 확장실업률’이 대공황에서나 봤던 25.1%를 기록하면서다. 체감 실업률 반영을 위해 2015년 관련 통계를 발표한 이후 최고치다.

확장실업률은 일하고 싶은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 못한 노동력을 드러내는 지표다.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만을 나타낸 실업률과 달리, 취업자 중에서 추가취업을 원하는 사람과 비경제활동인구 중 잠재적으로 취업이나 구직이 가능한 사람을 포함한다.

이는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 현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새로운 국제 기준을 마련했으며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통계청이 ILO 기준에 따라 고용보조지표 1~3을 발표하고 있다. 2018년 통계청은 고용보조지표 3을 ‘확장실업률’로 부르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기회만 있다면 일하겠다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요 기업의 취업 담당자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지원자들의 스펙은 단군 이래 최고”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청년 넷 중 한 명은 취업자의 기준인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고 싶어도 “어서 오라”는 곳을 찾지 못해 기약 없이 입사 준비를 한다.

대공황 때처럼 경제가 초토화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리 청년들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나. 이유는 자명하다. 4차 산업혁명 흐름을 타고 미래를 기약할 만한 반듯한 직장이 많지 않아서다. 지난달에도 제조업 일자리는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12개월째 감소했다.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에 스스로 나서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이 고용참사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란 생각이다.

엄중한 현실에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긍정적인 모멘텀”이라고 했다. 60세 이상 취업자가 34만6천명 증가했기 때문에 안도하려는 건가. 이런 일자리 상당수는 취업도 하지 못한 청년은 물론 지금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가 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는 세금을 부어 만든 포퓰리즘 일자리 아닌가.

이런 일자리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뉴욕대 교수가 지적한 ‘일자리인 척하는 (가짜) 일자리’에 불과하다. 이런 ‘고용 분식’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겠나. 정부는 반(反)기업 기조를 손질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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