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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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시간 15분 남은 열차의 승차권은 사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다. 급히 서두를 필요가 어디 있는가? 설령 급하게 가야 할 상황이라도 서둘러 가지 않을 테다.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는 ‘여유로움’에 대한 나의 고집이 나에겐 무엇보다 고귀한 일이기에 그렇다.

울산역 대합실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에 도넛 2개를 포장하여 열차에 오른다. 나중, 열차 안에서 허전해질 때가 되어 먹으면 참 맛있을 테니까. 한가히 커피 한잔에 도넛을 먹는 여유로움은 여행의 또 다른 ‘소소한 소중함’과 ‘망중한(忙中閑)’을 맛보기 때문이다.

여행하고픈 마음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두루두루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가! 울산역 플랫폼에서 바라보는 세상. 저 멀리 소실점같이 보이는 철로의 끝, 어디선가 총알같이 지나가는 고속열차, 사라진 후의 고요함. 그리고 역주변의 산들, 저어기 독수리 날개를 닮았다는 영취산도 아련히 보인다.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 젊은이들의 서투른 발랄함, 비즈니스맨들의 순발력과 박진감, 우리네 건강한 노인들, 제각각의 모습이 다양하고 아름답게 비치기만 한다.

여행자인 나는 울산역을 출발하여 동대구, 대전을 거쳐 광명을 지나 종착지 서울역에서 내린다. 오랜만에 ‘걸어서’ 광화문까지 한번 여유를 부려본다. 서울의 4대문 중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옆으로 차량들이 물 흐르듯 순조로이 흐른다. 우측으로는 남대문시장의 전경이 광활히 전개된다. 그 면적을 보면 어느 시장보다 규모가 거대하다. 의복에서부터 먹거리, 잡화, 그릇까지 없는 게 없는 곳이라 인간들의 시장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인간들의 생의 애착을 어디에서보다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부산하면서도 신성한 곳이 아닌가!

광화문으로 걸어가던 중에 눈여겨보았던 구수한 선짓국집 앞을 지나친다. 놀랍게도 서울 한가운데 시청 옆 빌딩골목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분위기가 다른 곳과 색다르다. 입구 옆에 걸려 있는 어마어마한 가마솥에서 곰국이 맹렬히 끓고 있다. 먹어보니 울산 태화장터에 있던 그 선짓국과 하등 다를 바 없이 털털하고 대파 맛 나는 국밥이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니 커피숍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별다방 콩다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명 커피점도 경쟁하듯 이어져 있다. 관청가가 즐비한 곳에 응당 몰려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현대에 사는 삶의 주인공들이 당당히 살아가는 우주 위에서의 모습들.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가! 지금 이 아름다운 것들, 두고두고 남기면서 살고 싶다. 후회스러운 일을 하지 않으며 오늘에 책임을 느끼면서 유유히 살아가고 싶다.

2천300여 년 전 장자(莊子)에게 배울 수 있는 ‘삶의 조건’으로 절욕, 허심, 여유, 자족, 유희 등을 들 수 있다. 오늘에 사는 우리들에게 급할수록 ‘여유’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하는 듯 나의 심금을 울린다.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려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소위 아모르파티. 이 또한 장자의 가르침에서 기인되지 않았는가?

‘참된’ 걷기 마니아는, 유명 관광지의 볼거리를 찾기 위하여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기분’을 찾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일 테다.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 첫걸음을 내디딘다는 ‘설레는 바램’과 ‘자유분방한 마음의 세계’를 넓히는 것, 저녁에 걷기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할 때 맛보는 ‘평화로움과 정신적 충만감’, 바로 그것을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리라.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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