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逆發想)의 처용문화제를 기대한다
역발상(逆發想)의 처용문화제를 기대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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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 조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하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이다. 과정은 안개가 걷힌 개운포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동해용왕과 그의 일곱 아들의 출현, 용이 남자가 되는 것, 용이 처용의 이름을 얻는 것, 처용이 미인과 결혼하는 것, 열병의 신인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사모하는 것, 역신이 사람으로 변해 처용 아내 처소의 경계를 몰래 침범하는 것, 처용이 귀가하여 누워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는 것, 처용이 춤추고 노래하며 물러나는 것, 역신이 본래의 모습으로 변하여 처용 앞에 꿇어앉는 것, 역신이 회개하는 것, 역신이 맹세하는 것, 처용의 형상이 벽사진경 문첩이 되는 것 등 차례로 이어진다. 결과는 처용 혹은 처용그림이 있는 곳에는 열병(熱病)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병이 무엇인가? 신라 하대에 나타난 전염병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염병으로 의학적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돌림병이었다.

그 시대에는 열병에 걸려 죽거나 고통 받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을 것이다. 다행히 열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문학적으로라도 접근하여 그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줄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일연 스님이고, 처용랑 망해사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엉뚱하게도 결과보다는 과정의 일부가 왜곡·과장됐다는 사실이다. 설화의 본질인 열병신의 퇴치는 회피·축소·외면되고, 오히려 그 방편인 처용 아내와 역신이 함께 누워있는 부분이 왜곡·과장·부각됐다는 점이다. 특히 처용의 아내와 역신의 동침을 기록한 ‘범(犯)’이라는 글자에 집착하여 이치에 맞지 않은 억지주장이 현재까지 어지럽게 춤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처용설화가 성적으로 음란하고 난잡한 이야기로 부정되고 현재까지 관념적으로 답습됨으로써 확대·발전은 커녕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전 읽기는 시대적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먼저 파악할 것은 열병(熱病)이다. 열병은 시대적으로 신라시대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만연했다.

모세(Moses)는 열병이 난치병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레위기와 신명기를 통해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의 준행 여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 여부를 잣대로 ‘벌(罰)’이라 기록하고 있다.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레위기 26장 16절)

의사인 누가(Luke)도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당시 의학으로써는 열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복음서를 통해 열병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재앙의 벌로 인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신명기 28잘 21∼22절)

반면 그는 열병의 절대적 퇴치자가 예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누가복음 4장 38∼39절)

‘범(犯)’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범(犯)의 용례를 성경에서 살펴본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犯)하는 자는 그의 눈을 범(犯)하는 것이라”(스가랴 2장 8절)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犯)하였도다”(스바냐 3장 4절)

소개한 용례와 같이 범(犯)은 주로 규율을 어길 때 표현하는 말이다. ‘역신이 범했다’는 표현 역시 인간의 경계를 침범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범을 남녀의 간(奸) 혹은 접(接)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생각한다.

이제 처용설화에 접근함에 있어 읽는 방법과 생각의 범위를 기존의 관념적 답습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어떤 이야기이든 지나쳐보지 말고 꿰뚫어봐야 한다. 시대적으로 생각해보면 새로운 현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꿈틀거리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해온 방식에서 벗어나 역발상(逆發想)으로 접근한다면 울산만의 독창적 처용문화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친숙한 것과 과단성 있게 이별해야 한다. 새롭고 낯선 것을 만나야 발전·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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