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③
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③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1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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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째 날 -

새벽마다 6시면 북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탁밧 행사다. 우리말로 탁발(托鉢)이다. 안내에 따라 사거리에서 맨발로 앉자, 스님들이 일렬로 다가온다. 허리마다 금속으로 된 발우(鉢盂)를 찼다. 동자승부터 노승까지 모두 붉은 가사 차림이다. 주민들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들이 스님들에게 공양으로 찹쌀밥을 한 덩이씩 떼어준다. 인생의 어둠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는 나그네들의 새벽 만남이다. 속세의 사람들이 피안의 수행자들에게 마음의 빚을 한 점씩 떠넘기는 정례(定禮) 행사다.

이렇게 밥 한 덩이씩을 덜어주기 위해 라오스에 왔는지도 모른다. 전생(前生)에 미리 예정된 일을 실행하고 있는가. 만나야 해서 만났는가. 동자승의 눈빛이 맑다.

지금은 이곳 시간으로 밤 9시. 사원에서 땡땡땡 하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삼라만상으로 하여금 고요히 잠들라고 치는 종소리가 분명하다.

돌아보니 오늘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 중심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곳곳을 기웃거리다가 모처럼 낮잠을 즐겼다. 저녁 6시에는 이곳 국립극장에서 전통 춤과 노래로 구성된 공연을 보았다. 15만 낍을 내기에는 아까운, 라오스의 문화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심하게 말하면 분장을 잘한 학예회라고 하겠다. 똥그르르랑땅 똥땅똥땅하는 리듬에다 단순 동작을 반복하는 춤사위에 하품이 나왔다. 그렇지만 이들의 문화를 이해해보려는 짐짓이었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비가 내렸다. 지금은 그쳤지만, 시원해서 좋다. 아주 상쾌하다.

- 일곱째 날 -

오전에 팍우 동굴을, 오후에 꽝시 폭포를 다녀왔다. 전날 예약했던 패키지 관광이 인원미달로 취소되었기에 툭툭이를 빌렸다. 이곳의 툭툭이는 트럭의 적재함을 탑승이 가능하도록 꾸민 것이다. 송태우라고도 부른다. 터덜거리는 트럭에 홀로 앉아 바깥을 내다보자니 비로소 여행자, 아니 방랑자가 된 기분이었다.

팍우 동굴은 2개의 동굴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원이다. 남우강과 메콩강이 만나는 너른 하구의 맞은편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를 잡았다. 위쪽에는 1천500개, 아래쪽에는 2천개의 크고 작은 불상이 가득하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저마다 불상을 모신 내밀한 공간이었는데, 언젠가 프랑스인 하나가 이곳을 발견하면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쪽배를 타고 강물을 건너는데, 늙수그레한 사공의 뒤틀린 채 몽그라진 오른쪽 발이 마음 아프다. 마침 일요일인 탓일까. 가파른 계단에서는 아이들이 자주 나타난다. 작은 새를 가둔 조롱이나 손바닥만한 튀밥과자 2쪽이 든 봉지를 들고 나그네들을 부른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궁핍한 라오스의 민낯이다. 1960년대에 아이들이 미군만 보면 “기브 미 껌, 쪼꼬레또”라고 외치면서 따라다니던 우리네 올챙이 시절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 서러운 속내에 가슴이 아릿했으니, 돌아오는 배에서 사공에게 몇 달러의 팁을 내주었다. 주변의 사공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꽝시 폭포는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규모 역시 어마어마하다. 숨 가쁜 발걸음이 저절로 폭포의 상단부로 향한다. 낙차가 시작되는 지점은 오히려 평탄하기 그지없다. 작은 배를 빌려서 더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루앙프라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배를 빌렸다. 메콩강의 낙조를 구경하기 위함이다. 탁월한 선택이었으니, 메콩강의 노을은 홍적색과 청회색만으로 농담을 달리해서 그린 조물주의 수채화다. 그것도 시시각각 빛을 바꿔가며 돌아가는 슬라이드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출렁이는 강물도 붉은 눈으로 하늘을 훔쳐보기에 바빴다. 한 점의 수채화가 그려내는 환술 앞에서 나는 말문을 잃었다. 그냥 강물 위를 둥실 떠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강바람까지 맑고 시원하였으니, 메콩의 그 붉은 태양은 내 가슴에 깊은 화인이 되었다. (④편으로 이어짐)

유영봉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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