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의 역사산첵]우리나라 역사를 ‘한국사’라고?
[박정학의 역사산첵]우리나라 역사를 ‘한국사’라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0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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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이름이 『한국사』다. 2010년까지는 중·고 모두 『국사』였는데, 2011년부터 『한국사』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렇게 된 데는 국회가 한몫을 했다. 「사료의 수집·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을 2010년 유기홍 의원 발의로 개정하면서 원래 법 이름에 없던 ‘한국사’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2001년까지 중·고 교과서의 이름은 『국사』였다. 그런데, 제7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2002년부터 고교 2~3학년 선택과목 교과서인 『한국 근·현대사』에 ‘한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고 2007, 2009년 교육과정에서 『한국사』가 되더니, 2010년 검정심사와 2011년 혼용과정을 거친 후 2013년 초부터는 모든 학년에 적용되었다. 중학교는 그냥 ‘역사’라 하여 세계사와 국사를 함께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한국사』라는 교과서 이름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를 미국이나 영국처럼 제3자로 보는 ‘비주체적인 이름’이고, 둘째,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어’라는 교과서 이름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 셋째, ‘대한민국’ 역사만 의미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넷째, 내용에서는 역사의 주체를 민족이나 겨레라면서 책이름은 ‘나라’로 보는 모순이 생긴다.

더구나 개념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아 관련 법규나 정부 지침에도 ‘국사’와 ‘한국사’라는 말을 함께 사용해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단적으로, 개정을 발의한 유기홍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 법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근거법으로서 명실상부한 한국사 중심기관으로…(국편의 활동을 보강하여) 한국사의 연구·보급 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될 초석을 놓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동법 4조에서도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체계적인 발전을 위하여 교육부 산하에 국사편찬위원회를 둔다”고 했고 「교육부 및 소속기관의 직제 시행규칙」에서도 ‘한국사’와 ‘국사’가 다른 말인지 같은 말인지 알 수 없게 혼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편의 홈페이지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는 우리나라 역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함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사의 연구·편찬·연수·보급을 원활하게…”라는 표현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한국사’ ‘우리나라 역사’ 또는 ‘한국역사’라고 하면서도 국편의 운영규칙에서는 ‘국사편찬’을 주요 임무로 기술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고 역사교과서 집필기준(2011년)에서는 ‘우리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하여 나라보다는 민족이 한국사의 주체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역사에 대한 표현이 법규와 정부지침에서부터 한국사, 국사, 우리 역사, 한국역사 등으로 명확하지 않고, 그러다 보니 교과서 내용에서도 통일된 기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내부적 혼란은 법이 신중한 검토 없이 소수 의견을 따라 졸속으로 만들어졌고, 교육부 지침을 만든 공무원이나 관련 학자들도 그 용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분명하다. 먼저, 국사편찬위원회와 국어의 형평성을 감안해 ‘한국사’라는 교과서 제목은 바꾸어야 한다. 역사의 주체를 나라로 본다면 ‘국사’, 민족이나 겨레로 본다면 ‘민족사’ ‘겨레사’, 그 문화에 초점을 둔다면 ‘문화사’라고 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역사’, ‘우리 겨레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법률과 규정, 지침의 혼란스런 내용을 제대로 정리해서 재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교과서 내용도 통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조치를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최고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심이 필요하다. 기대해 본다.

<박정학 역사학박사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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