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②
유 교수의 라오스 여행기 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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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날 -

일정을 다소 수정하기로 했다. 비엔티엔의 신선도가 생각보다 높지 않으니, 캄보디아나 태국 그리고 베트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광 때문이다. 역사 유물이랄 것도 별로 없으니 그저 맹숭맹숭하다고 할까.

오전에 호텔 차량으로 붓다파크에 다녀왔다. 그런데 이곳은 이름만 붓다파크지, 힌두교의 비슈누와 시바의 상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테마파크다. 와불 또한 과연 부처일까. 의구심마저 든다. 불교와 힌두교 사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남아 문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콘크리트로 조성된 대부분의 상들이 뱀으로 휘감긴 모양이니 본적지가 힌두교임에는 자명하다. 공원 안을 두루 구경하면서 남쪽의 첨탑에 가파르게 올라갔다. 그리고 바로 옆 실크트리 그늘 아래에 앉아서 숨을 돌렸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태국에서 메콩강을 쉽사리 건너온 바람이다.

길을 건너다가 마침 다가오는 버스를 탔다. 14번 버스는 태국과 라오스를 잇는 ‘우정의 다리’를 구경시켜준 다음, 이윽고 이틀을 머물렀던 라미쉬 플라자 호텔 앞에 섰다. 점심은 미리 생각해둔 대로 면을 시켰다. 이름은 모르지만, 하나는 튀긴 면발 위에 야채를 넣고 끓인 국물이 걸쭉하게 얹어져 나왔다. 다른 하나는 얼큰한 국물에 새우 세 마리와 아주 가늘고 꼬불꼬불한 면발이 들어간 국수였다. 한 마디로 해장용으로 추천하기 딱 좋은 맛이었다. 맥주 2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후 2시. 호텔에서 알선해준 미니 밴을 타고 예정보다 하루 먼저 방비엥으로 출발했다. 4시간의 여정이 붉은 먼지로 이어진다. 직선으로 뻗은 왕복 2차선이 제법 널찍하다. 그러나 시속은 겨우 40km에서 50km를 넘나든다. 포장조차 시원치 않은데다가 이따금 소떼들이 길을 막는다. 두 시간 정도 평지를 따라 곧게 달리던 미니 밴이 휴게소에 들른 다음 구릉을 따라 구불거린다. 노을이 물들 무렵, 험준한 산세가 품을 벌린다. 방비엥이다. 먼지 탓에 목까지 칼칼한 기분이다.

- 넷째 날 -

방비엥은 멀리서 바라볼수록 아름다운 곳이다. 마치 중국의 계림을 연상케 하는 첩첩의 산세들이 그림보다 더 아름답다. 그러나 몇 달 동안 계속된 건기로 인해 온통 먼지투성이라서 느긋한 마음을 내기가 어렵다. 아무튼 이곳은 계림에서 하롱베이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이니, 같은 석회암 지질대가 유사한 풍경을 자아내는 듯싶다.

오전에 카약과 짚라인을, 오후에 동굴체험과 블루라군에서의 수영을 즐겼다. 그 가운데 카약 타기가 단연 으뜸이었으니, 한 시간 남짓 남콩강과 하나가 된 때문이다. 급한 물살은 급한 물살대로, 여울은 여울대로, 암벽지대는 암벽지대대로 물살을 가르는 재미가 있었다. 도도한 수면 위에서 노 젓기를 잠시 멈추고 그냥 떠내려가자니,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달밤에 배를 띄워놓고, 한 잔 술에 이백(李白)의 「월야독작(月夜獨酌)」 을 읊고 싶은 마음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내 청춘의 얼굴 하나가 수면 위로 불쑥 떠올랐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 얼굴을 꼭 붙들어 쥐고 나는 밤거리를 누볐다. 풋풋한 청춘의 그녀와 팔짱을 끼고 방비엥의 야시장을 활보했다. 여느 청춘들에 지기가 싫었던 탓일까. 그녀와 나는 노상에서 세 번의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꿈을 끝내 부여잡기 위해 방비엥에서 생산된다는 남콩 맥주를 사들고 주막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주모는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없다. 허, 이것 참!

- 다섯째 날 -

아침 9시. 미니밴을 타고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루앙프라방으로 왔다. 6시간이나 걸리는 지루한 여정은 역시 붉은 먼지 속에서 열렸다. 산중으로, 산중으로만 향하는 차창에 계림과 유사한 산세가 이어졌다. 힘들게 힘들게 몇 개의 고개를 넘자 “차를 갈아타라”고 한다. 산사태가 난 가장 높은 고개의 정상이다. 뻑뻑해진 다리를 풀고 다시 밴에 오르자, 도로 상태가 그나마 나아진다. 먼지도 일지 않는다.

굳은 몸으로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뒤 푸시공원으로 올랐다. 낙조를 구경하기 위해 2만 낍을 지불했다. 라오스에 와서 지불한 가장 비싼 입장료다. 라오스의 저녁 해는 예의 그 적홍색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메콩강물도 핏빛으로 물들었으니, 열대의 정열은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불탑 위에 뜬 반달이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③편으로 이어짐)

<유영봉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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