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울산, 암각화 보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심층진단] 울산, 암각화 보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 이상길
  • 승인 2019.04.0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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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주변환경 훼손 않고, 최대한 원형보존에 ‘무게추’

국보 285호인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안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민선 7기 들어 대곡천 암각화군 일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최우선 순위로 점차 부상하면서 물 문제는 후순위로 다소 밀리는 분위기가 포착되는 가운데 그 동안 보존방안을 놓고 대립각만 유지해왔던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민선 7기 들어서는 힘을 합치는 새로운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울러 세계유산 등재 관련 핵심쟁점으로 사연댐 해체도 급부상하고 있다. 민선 7기 들어 형성되고 있는 암각화 보존방안의 새 패러다임을 심층 진단해봤다.

◇ 시·문화재청, 대곡천 암각화군 일대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표 맞손

지난달 초 울산시는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대곡천 암각화군 역사관광자원화 사업용역’을 발주한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이 용역의 발주가 의미가 큰 건 그 동안 진전이 거의 없었던 대곡천 암각화군 일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작업이 본격화됐다는 것도 있지만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함께 손을 잡았다는 의미가 사실 더 크다. 이 용역의 예산은 70%를 문화재청이 지원한다.

세계유산 등재는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주요 공약으로 일찍부터 작업이 시작됐지만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재목록 등록이 전부일 뿐, 민선 6기까지는 울산시와 문화재청 간의 암각화 보존방안에 대한 견해차로 진전이 거의 없었다.

견해차의 핵심은 암각화군 일대에 공사를 통해 손을 댈 것인가, 말 것인가였다. 최종 목적지와도 같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문화재청은 최대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원형을 원해 암각화 보존방안도 ‘사연댐 수위조절안’을 고수했지만 울산시는 시민들에게 공급할 식수 부족을 이유로 ‘생태제방안’이나 ‘유로변경안’처럼 반드시 손을 대야만 하는 방식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울산시와 문화재청의 관계는 민선 7기 출범 후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선 7기 울산시도 처음에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제안으로 ‘신유로변경안’같은 공사가 불가피한 방안을 잠시 만지작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1월말 정재숙 문화재청장의 울산방문을 계기로 180도 바뀌었다.

당시 시와 문화재청은 잠재목록 등재 후 10년 가까이 잠만 자고 있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카드를 함께 꺼내 들어 힘을 모으기로 했고,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으로 용역까지 발주하게 된 것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은 용역 특성상 당연하지만 그 동안은 시와 문화재청 간의 견해차로 발주조차 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시와 문화재청이 세계유산 등재를 공동 목표로 암각화 보존과 관련해 사실상 처음으로 손을 잡게 되면서 용역이 발주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용역 발주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문화재청과 손을 잡은 만큼 울산시도 더 이상 생태제방 설치나 유로 변경처럼 암각화 주변 환경에 훼손이 가는 보존방안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도 있다”고 덧붙였다.

◇ ‘물 문제’ 후순위로… ‘사연댐 해체’ 쟁점 부상

민선 6기까지 암각화 보존에 대해서는 울산권 맑은 물 공급 문제가 핵심 쟁점이었다. 보존방안 선택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문화재청이 사연댐 수위조절안만을 고수하니 울산으로서는 사연댐 수위를 낮출 경우 발생할 식수 부족분을 타 지역으로부터의 공급을 요구하면서 쟁점이 됐던 것. 하지만 지자체 간의 입장 차로 진전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들어 세계유산 등재가 최우선순위가 됨에 따라 물 문제는 후순위로 다소 밀리는 대신 사연댐 해체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연댐 해체 주장은 지난달 민선 7기 들어 시정 자문기관으로 새로 생긴 미래비전위원회를 통해 나왔다. 위원회는 당시 ‘대곡천 재자연화’를 천명했고, 관련해 지난 1일에는 지역 5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갖고 사연댐 해체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연댐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의 핵심 근거는 △사연댐의 댐 기능(홍수조절 등) 상실 △사연댐 해체 시 드러날 유적(추가 암각화, 공룡발자국) 존재 가능성 △사연댐 해체 등 대곡천 일대 재자연화를 통한 세계유산 등재 도모로 요약할 수 있다. 아울러 사연댐을 해체한 뒤에는 상류 대곡댐과 사연댐 취수탑을 관로로 연결하거나 취수탑을 대곡댐으로 이전하면 물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할 경우에는 부·울·경 차원에서 공동으로 낙동강 수질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늘 그래왔듯 가뭄 때는 낙동강 물을 받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비록 수문은 없지만 홍수 시 사연댐이 한번 걸러주는 만큼 댐으로서의 기능이 아직 충분하며, 사연댐 해체 후 관로 연결이나 취수탑 이전 시 들어갈 비용이 만만찮고 대곡댐 수량으로는 식수공급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수 공급을 위해 하루 35만t 정도가 필요한 울산에서 사연댐의 경우 현재도 상류 대곡댐 등에서 모여서 내려온 물 17만6천t 정도가 취수탑을 거쳐 천상정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암각화 보존전문가는 “지자체 간의 입장 차로 물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보니 민선 7기 울산시가 세계유산 등재를 매개로 문화재청과 손을 잡은 뒤 등재만 되면 물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결국 지난해 지방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한 현 집행부가 이전 집행부보다 암각화 일대가 지닌 역사적인 가치에 더 무게를 둔 결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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